1, 제목: 종석대(차일봉)
2, 언제: 2,025. 6. 6.(금,흐림)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상선암임구- 옛등로- 우번암입구- 삼거리- 종석대- 우번암- 상선암(약 5.7km)
5, 소요시간: 4시간 57분
6, 시간대 별 구간
07: 43. 상선암 입구
07: 51.- 옛등로
08: 18.- 계곡 만남& 이탈
08: 30.- 지능선
09: 29.- 상선암 삼거리
10: 01.- 간미봉능선 삼거리
10: 22.- 종석대
10: 40.- 등로
11: 07.- 우번암
12: 16.- 상선암
12: 40.- 상선암 입구
7, 산행소묘
6월 3일 노고단 산행 후 사흘만에 또 산에 갑니다.
옛날에는 자주 있었던 일이지만 근래에는 드문 현상이기는 합니다.ㅎ

07: 43. 성삼재를 종단하는 861번지방도가 기역 자로 크게 꺾이는
상선암 입구에서 출발합니다.

다리를 지나고,

07: 51. 상선암 오르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진행합니다.

지금 오르는 이 길이 옛날 지도에는 우번암으로 오르는 등로로 유일했으나
근래 상선암에서 바로 오르는 길이 개척되어 그 길을 많이 이용합니다.
나중에 하산 때 걸을 겁니다.
계곡을 오른쪽에 끼고 오릅니다.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일본넘들이
부족한 연료로 사용할 거라고 온 산의 소나무에 이렇게 칼질을 해놓았습니다.

초반에는 그런대로 보이던 길이 오를수로 희미해집니다.
사람 발걸음이 뜸하다는 얘기입니다.

08: 18. 천은사계곡을 잠시 만나고,
길은 왼쪽으로 크게 꺾어 지능선을 바라고 오릅니다.
길을 잃어 잠시 헤매다가,
08: 39. 등로를 잡습니다.

번호를 붙인 걸 보니 소나무를 관리하는가 봅니다.
상처를 입고도 꿋꿋하게 잘 크고 있는 나무도 있고,

지능선 진입 이후 길은 뚜렷한데 경사가 만만찮은 깔끄막길입니다.

아픈 나무에 셋방살이 하는 넘도 있고,

잔가지 꺾은 부분이 바짝 말라 있는 걸 보니 사람이 다닌 지 오래되었습니다.

09: 29. 왼쪽에 이 소나무가 보이는 지점으로 올랐습니다.
상선암으로 내려가는 삼거리입니다.

우번암 입구를 지나쳐 곧장 오릅니다.

바람의 영향인가 하늘 높은 줄 알고,
옆으로 잘 자랐습니다.

노린재나무

10: 01. 차일봉 한 쪽의 지붕 끄트머리로 올랐습니다.
흐린 날씨이지만 조망은 시원합니다.
가운데 간미봉, 그 뒤에 지초봉
861번 지방도가 구불 구불 힘겹게 시암재로 오릅니다.
아! 천은사삼거리에서 성삼재 너머 달궁삼거리를 잇는 861번지방도가
이제 군도로 격하되었습니다.
통행량이 엄청시리 많고 사고도 자주 나는 도로인데.

저 오른쪽, 멀리 견두지맥 뒤로 남원시내가
아스라이 보입니다.

노고단과 종석대

왼쪽으로 지난 6월 3일 보지 못했던 반야봉이 오늘은 보이네요.

앞의 고리봉과 뒤에 우뚝한 만복대,
오른쪽으로 서북능선이 흐릅니다.

붉은병꽃나무

만복대 왼쪽으로 요강바위, 다름재,
솔봉능선이 앞으로 내려오고,
영제봉 지나 견두지맥이 남원과 구례를 가르며 숙성치 지나
견두산으로 돌아나갑니다.

노고단 아래에 선교사 유적지가 보입니다.

오늘의 목적지 종석대가 가까워졌습니다.

10: 22. 종석대에 도착했습니다.
형제봉능선과 차일봉능선 사이의 화엄사계곡,
저 아래에 화엄사가 보입니다.
멀리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염되지 않았다는 강!
섬진강이 구례읍을 휘감고 돌아 나갑니다.

노고단에서 흘러내리는 형제봉능선과 건너편에 왕시루봉능선
저 두 능선 사이의 계곡이 지도에는 토지천으로 되어 있는데,
문수저수지 위쪽 계곡이라 문수리계곡이라 부릅니다.
다시 상류로 오르면서 지석골, 용소골, 밤재골, 극락대골, 질매재골, 진도사골로 지계곡이 갈리지요.

조금 당겨서, 왕시루봉 왼쪽 아래 잘록한 느진목재,
오른쪽 멀리는 섬진강 너머 백운산, 한재, 또아리봉, 도솔봉.
때는 1,948년 10월 19일에서 10월 27일.
고조선 시대는 차치하고라도 삼국시대 1,000년, 고려 500년, 그리고
1,392년 조선의 건국 이래 나름대로 찬란하게 문명의 꽃을 피우며 면면히 이어 내려오던 조선이,
세계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쇄국에 갇혀 허둥대다가,
1,910년 경술국치로 518년 만에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신산했던 일제 치하를 벗어나
1,945년 광복을 맞고, 미 군정기를 지나
1,948년 8월 15일 즉, 대한민국으로 다시 독립한 때로부터
두 달만에 여수.순천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때는 국군이 되기 전 여수에 있던 조선국방경비대 14연대에서
남조선노동당 계열 2,000명 병사들이 주축이 되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어기고
일어난 반란 사건이었습니다.
김지회 중위, 지창수 상사 등이 주축이었습니다.
순천으로 이동해 중위 홍순석과 결탁하여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군과 경찰 250명이 죽고,
반란군에게 협조했다는 명목으로 민간인 3,300명이 희생된 사건이었지요.
건국 초기의 혼란한 정국에서 일어난 민족의 참극이었습니다.

앞에 차일봉능선, 다음이 형제봉능선, 그 뒤에 왕시루봉능선, 저 멀리 백운산능선.
순천에서 광양으로 넘어온 패잔병들이 저기 보이는 백운산을 넘어 토지면 왕시루봉 끝자락
문수리계곡으로 숨어듭니다.
문수리계곡으로 들어온 자들은 지리산 빨치산이 되어 남부군 이현상 사령관의 휘하에서
투쟁을 계속합니다.
지리산은 민족의 상흔이 곳곳에 새겨진 아픔의 산입니다.
의신, 삼정마을, 위 빗점골 합수내 흐른바위에서 이현상이 최후를 맞았고,
내원골 안내원에서 마지막 공비 정순덕이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고,
대성골은 공비 토벌의 마지막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며,
빨치산들이 웅석봉능선에 달이 뜨는 것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 해 달뜨기능선으로도 불리웠습니다.
그동안 작가 김성동이 정순덕에 관한 글을,
이병주가 [지리산]이라는 대하소설로,
이태가 [남부군]으로, 조정래가 [태백산맥]으로 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던
지리산 빨치산에 대하여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지나온 능선을 뒤로하고 내려갑니다.
우번암 뒷편 올라 선 지점에서 이 곳 종석대까지 능선이 멀리서 보면 태양을 가리는
遮日(차일), 즉 천막처럼 생겼다고 차일봉이라 부릅니다.
아래는 산나그네 백남오 선생의 글과,
인텃넷에서 검색한 글이 인용입니다
鍾石臺 돌종이란 의미를 지닌 종석대(鍾石臺·1361m),
정상 암봉이 종 모양을 닮아서라거나 바람이 바위에 부딪칠 때 돌종 소리가 나서 그렇게 부른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우번조사가 도를 통하던 그 순간, 이곳에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소리가 들렸다고 하여 이곳을 종석대라 부른다.
명칭도 여러 개다. 우번조사가 도를 깨쳤던 곳이라 하여 ‘우번대’라고도 하고 관음보살이 현신했던 곳이라 하여 ‘관음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석대(鍾石臺), 이곳에 오르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번대 법종 스님의 말로는 예전 지리산 빨치산들이 이곳 종석대에 올라 사방을 파수했다고 한다.
구례들판과 섬진강, 노고단 방면, 주능선 쪽, 만복대 등의 북쪽 능선 등 동서남북 보이지 않는 곳이 없으니
지리산 서쪽 방면에서 토벌대의 이동을 파악하기에는 이곳만 한 곳도 없었을 것이다.
흔히 지리산 주능선의 서쪽 끝 봉우리를 노고단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종석대가 서쪽 끝이다.

털개회나무, 정향나무, 수수꽃다리 등 이름도 많은
향기 좋은 나무입니다.
덜 피었죠?

요놈은 조금 더 벌어졌습니다.ㅎ
그만큼 향이 많이 나지요.
옆에서 보면 꽃이 한자 丁을 닮았고 香이 좋다고
丁香나무라 했습니다.

내려서면서 뒤돌아 본 종석대

차일봉 일대에 털개회나무가 여러 그루 보입니다.
10: 40. 삼거리로 내려와 우회전하여 진행합니다.

산목련(함박꽃나무)

절집 창고
파란 통은 전기 계량기입니다..

산중이라 원격 무선으로 계량을 하는군요.
세상 참 좋습니다.
반영된 할배는 눈이 짝짝이예요~~~~
입도 비뚤어지고.
젊을 때 윙크를 하도 많이 해서 요렇게 되었다는!
그래서 옛부터 늙으면 사진 찍기를 사앙합니다.
보기 밉상이라꼬.
대체로 미인의 기준은 얼굴 좌우 대칭이 가지런한 게 기본입니다.

11: 07. 우번암입니다.
牛翻臺(우번암,牛翻庵)의 전설
옛날 신라 때 젊은 스님 우번이 조용한 상선암을 찾아 10년 동안의 좌선 수도를 결심하고 혼자서 열심히 불도를 닦기 시작했다.
우번이 정진하던 9년째 되는 어느 봄날이었다. 선녀처럼 아름다운 절세미인이 암자 앞에 홀연히 나타나 요염한 자태로 우번에게 추파를 던지는 게 아닌가.
그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우번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정답게 손짓을 했다.
유혹에 홀린 우번은 젊은 피가 끓어올라 자신이 수도승이란 것도 잊은 채 그 여인의 뒤를 따라 나섰다.
그 미모의 여인은 보일 듯 말 듯 앞서가며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산새들이 즐겁게 노래하는 아름다운 수림 속을 나는 듯 가볍게 지나쳐
상봉을 향해 높은 곳으로 올라만 갔다.
우번도 놓칠세라 그 여인을 따라 숲속을 헤치며 정신없이 허겁지겁 따라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종석대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서 요염하게 웃으며 손짓하던 그 여인은 갑자기 사라지고 난데없이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고 위엄스레 서 있었다.
우번은 깜짝 놀라 정신을 가다듬었다. 관세음보살이 자기의 도심을 시험하기 위해 미녀로 변신한 것임을 비로소 깨닫고
그 자리에 꿇어 엎드려 자신의 어리석음과 허튼 마음을 뉘우치고 참회했다.
우번이 다시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니 관세음보살은 간데없고 그 자리에 큰 바위만 우뚝 서 있었다.
우번은 자신의 수도가 크게 부족함을 깨닫고 이때부터 더욱 분발하여 수도정진하기로 결심했다.
상선암으로 다시 내려가는 대신 그 바위 밑에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을 계속했다.
우번은 수 년 동안 수도를 한 끝에 마침내 성불하여 신라의 이름난 도승이 되었다 한다.
그런데 우번 스님이 도통하는 순간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석종(石鐘) 소리가 홀연히 들려왔다.
바로 이 석종 소리가 울렸다고 하여 이 산봉우리를 '종석대'라 부르게 된 것이다.
종석대는 다른 이름도 함께 갖고 있는데 우번 조사가 토굴을 파고 수도정진한 곳이라 하여 '우번대(牛翻臺)',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여 서 있던 자리라고 하여 '관음대(觀音臺)'라고도 불린다.

우번암 편액

스님이 기거하지 않는가 텃밭이 잡초 투성이입니다.

뒤로 종석대가 보입니다.
이제 내려갑니다.
내림길은 상선암 위 토굴까지 1km 남짓으로 거리가 짧은 대신에 경사는 더 급합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 조심하니 진행이 더딥니다.

내림길에도 상처난 소나무가 많습니다.
1,940년대 초에 상처가 났으니 80년 세월을 견디며 크게 자랐고.....
그 이전 나이와 더하면 100살이 훌쩍 넘었겠지요.

12: 08. 토굴입니다.
우번암에서 한 시간이 걸렸습니다.
전에는 수도 정진하던 스님이 보였는데 이제 퇴거한 모양입니다.

상선암에서 오를 때는 토굴로 들어가지 말고 바로 올라 가라는 안내판입니다.

12: 16. 상선암입니다.
손바닥 만한 채마밭에 당귀, 갓을 심었습니다.

초파일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연등이 하나도 없네요.
이 절집에 다니던 신도들은 저 아래 교통 좋은 절에 다 가버렸나?
하기야 명당 찾는다꼬 심산 높은 곳에 묘자리 잡아놓으면 후손이 관리를 안 해
실묘하기 십상입니다.
지금은 교통 좋은 곳이 명당입니다.
더 좋은 곳은 산소 관리를 해주는 공원묘지!
더 편리한 것은 납골당!
서랍에 유골함 넣어 두고 가끔 찾아 참배합니다.

상선암 편액
문외한이 보아도 멋진 서체입니다.
암자는 조용합니다.

절집의 일용품을 나르는 지게와 지팡이.

금창초(금란초)

텃밭에 고추를 심고 물을 준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스님이 주석하시는가 봅니다.


이 어르신은 신산한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별세하였습니다.

도로 변 절집 입구에도 지게 두 개와 지팡이!
12: 40. 도로 도착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합니다.

8자로 걸었습니다. ㅎ
제 팔자가 평생 산을 떠도는 것 같이.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좋은 산행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아주 좋습니다. 인적 드문 곳을 홀로 개척 산행 하시면서
지명 소개도 해 주시고 고맙습니다. 제주 4.3 사건 하니깐
70년도 인가? 우리 고향집에 잠시 들러주신 제주 주둔 9연대장
김익렬(예비역 중장, 하동 금남면 출신)장군님이 생각 납니다.
입담이 워낙 좋아 군단장 시절 육군 3대포 중 한 명 이라고
소문난 분 이지요, 후임으로 부임한 박진경 연대장(남해군 남면 출신)은
작전 전야에 남로당 소속 부하들에게 죽임을 당했지요 슬픈 역사입니다.
늘 안산과 즐산입니다~~~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