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여름도 시간 앞에는 버티지 못했다.
에어컨 달궈 주었던 뜨거웠던 전선줄도 정리해 패킹해 버리고 새벽 차가운 공기에 이불을 꼭 싸맨다.
더위가 심상치 않게 다가올 때 누나는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삼 년을 난리 치던 코로나도 사라졌는데 정작 누나의 부재로 인한 트라우마를 안고 백여 일을 살고 있다.
49제를 치르며 작은 나무 밑에 배 곪지 말라고 누나의 유품인 숫갈과 시에라 컵을 달아 드렸다.
누나가 눕고 싶은 곳은 지리산 일 텐데~~ 하는 아쉬움이 우울한 마음이 내내 짓누른다.
가객님이나 꼭대형님도 지리 99 모임에서 산유화 추모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이청준 작가는 축제라는 소설에서 장례식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마지막으로 만나 한스런 세월의 응어리를 씻어낼 뿐 아니라
남은 사람들끼리도 서로 화해의 손길을 나누는 화합의 향현이란 의미를 던져준다.
누나를 보내 드려야 했다.
죽음이란 만날 수 없는 물리적 트라우마가 기억을 지배하니 누나와의 추억을 떠 올라 일상을 우울하게 만들어 버린다.
지난달 지리산을 다녀오며 봄이와 누나가 부재한 차 안에서 꼭 있어야 할 소중함이 사라진 것 같고 떠들어 대던 잔소리가 그리웠다. 봄이도 같은 맘였다.
축제를 만들고 싶다.
나만 갖고 있는 지리 99의 산유화의 상징을 나눔으로 기억화 하고 싶었다.
멀리 가면 기억이 사라질까 백여 일 지난 청소산행 모임이 좋겠다 여기고 청소산행과 추모식를 같이하기로 했다.
보스에게 부탁해 현수막을 제작하고
수야동생한테 추모글을 쓰라 연락한다.
추도문 : 수야
추도문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써보는 것이라 어떤 형식으로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제 나름대로 누나에게 짧은 편지글 하나를 써왔습니다.
읽어 보겠습니다.
지나가는 것들이 다 지나간 뒤에도 지나가지 않는 것들은 남아있습니다.
많은 것들이 지나간 뒤에야 지나가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누나가 그렇습니다.
어느덧 시간이 빠르게 흘러 여기까지 왔지만 우리들 마음속에 지나가지 않고 남아 누나를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누나와 우리가 그토록 좋아하고 사랑한 지리산입니다.
청소 산행인 오늘, 이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사실 같지가 않습니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지만 누나의 부재가 몰고 오는 슬픔은 아물어가던 상처가 다시 벌어진 듯 아리고 쓰라립니다.
저는 인연이라는 걸 믿습니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서로 만나게 해주는 보이지 않는 실타래가 우주의 섭리에 따라 미리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인연의 끈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강제로 끊어질 때 견디기가 많이 힘듭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인간의 영역에서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사실 앞에서는 디디고 선 땅이 천길 아래로 무너지는 무력감도 듭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얻는 기쁨보다, 무엇인가를 잃었을 때 슬픔이 훨씬 더 큽니다.
누나와 만남보다 이별이 더 아픈 것이 그런 까닭입니다.
비보를 접하고 처음에는 누나가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습니다.
회피했습니다.
피하고 있으면 조금은 덜 아플 것 같았습니다.
부고가 올라왔을 때 명복을 빈다는 댓글조차 달 수가 없었습니다.
영정사진 속 편안한 미소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회피한다고 피할 수 있거나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습니다.
그러고 있으면 조금은 제 마음이 편할 것 같은 비겁함이었습니다.
가을에 다시 오자고 약속했던 청학 연못을 이제는 같이 갈 수 없습니다.
이 가을, 누나가 우리 곁에 없다는 현실이 너무 비현실 같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인연, 지리산 곳곳을 함께 걸었던 추억, 눈부셨던 그때만을 기억하며 편안히 쉬실 수 있도록 누나를 이제는 보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누나가 우리 곁을 떠나가고 벌써 한 계절이 지나갔습니다.
그럼에도 누나를 그리워하는 산꾼들이 이렇게 모이는 것을 보면서 복숭아나무와 자두나무는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 길이 저절로 생긴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누나가 지리산과 지리 99를 99 생각했었던 마음이 얼마나 깊고 진심이었는지 저는 압니다.
삶의 불꽃이 다 타들어 가고 있었던 그때에도 산정무한 행사를 챙기고 준비하셨습니다.
몸에 이상이 생겨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을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는 카톡은 눈물 자국처럼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저에게 산악용 시계를, 다른 사람에게 간이 의자를 나누어 주며 “너한테 줄 수 있어 너무 좋다!”라고 하시던 그 미소는 영정사진 속 그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어쩌면 그때부터 이미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목으로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옵니다.
저는 누나의 인생을 세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누나가 삶을 어떤 자세로 사셨는지는 압니다.
언제나 노동의 가치를, 일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항상 열심히 일하셨고 부지런히 사셨습니다.
무슨 일이든, 어떤 일에서 건,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산행에서나 행사에서나 늘 처음 오신 분들이 소외되지 않게 챙기고 같이 어울릴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손주가 태어난 소식을 전해주던 그 들뜬 목소리는 삶의 기쁨이 온통 거기에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런 누나의 삶은 소박하지만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다음 생이라는 것은 없다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다음 생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에라도 그런 것이 있다면 그곳에서 누나를 또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에도 누나가 누나 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에는 좀 더 다정하고 대들지도 않고 말도 잘 듣는 동생이 되어드리고 싶습니다.
누나를 만난 일은 내 생애의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런 기쁨을 내게 주어서 고마웠습니다.
사람의 인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이처럼 쉽다는 걸 알게 해 준 누나가 저는 참 좋습니다.
누나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이 기억되지 않을 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지리산의 기억과 우리들의 추억과 함께 편안히 영면하세요.
누나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부디 안녕히 그리고 See you again.
예상은 했지만 슬픔이 절절하다.
수야는 이 글을 읽으며 문뜽이 답지 않게 울음을 참지 못하며 간신히 낭독했다.
그리고 시 잘 쓰는 산용호 동생한테 추모시 한편 써주라 했고.....
들꽃영원한 산유화로 피어라 : 산용호
-지리 99-지리 99의 마음을 담아 산유화님의 영면을 추모하며
그대는 떠났지만
지리산은 그대를 품었고
우리는 그대를 보내지 않았거늘
그곳으로 산유화를 보러 간다네
파마머리 그 뽀글뽀글한 산꾼 소녀를 만나러 간다네
유려하게 흐르는 지리의 어진 능선들이
그대의 눈 속에 담겼네
선유계곡을 구르는 단풍 진 돌들이며
해맑게 흐르는 허공달 원시의 소리까지
그대의 코와 입에 아롱져
엄마를 닮은 지리산 그 너른 품에
다시 소녀로 안겼으니 그대는
지리산의 형이고 누나요 우리들의 고운 언니가 되었다네
이제 그대는 지리산의 토종 꽃 산유화라네
주인 없는 주인이 되고
이름 없는 이름이 되어
세석의 잔돌 사이 달디 단 빗물 머금고
원 없이 피어나 우리들의 화원을 만들어
저 이끼폭의 사랑스러움으로
때론 바래는의 붉디붉은 열정 안고
제석봉 구절초처럼 청초하고 올곧게
맑디맑은 천왕샘 머금고 마침내 상봉에 샘솟아
아흔아홉 골과 능선마다
산유화로 피어나 하늘거리며
가쁜 숨 몰고 오는 정 많은 산꾼들
부디 엄마처럼 안아주고 거친 숨 쉬어가게 손 내밀어 주세요
견딜 수 없는 상처와 넘치는 기쁨에도
산유화 한 다발 안겨주세요
지리에 푹 빠지게 유혹해 주세요
그리하여 다시금 한자리에 모여
이 지리와
이 사람들과
이 아흔아홉 골의 이야기를
벽소명월과 연하 별빛 불러놓고
밤새 나누면 얼마나 설렐까요?
이름 없어 더 자유로운
주인 없어 더 영원한 꽃이여
속 깊은 아늑한 지리가 다 그대 것이니
갈 봄 여름 없이 늘 들어와
그리운 들꽃 산유화로 피어라
지리의 들꽃으로 영원하시라
오!
곱고 그리운
우리들의 산유화여!
지리산의 산유화여!
고마운 동생들~~~
누나의 행복한 어색함 묻은 미소가 떠 올랐다.
분명히 그랬을 거다.
누나 잔치 꾸며 줄게~~~
난리를 치고 못하게 막았을 거다.
누나는 한 번도 주인공인적이 없었다.
지리 99의 대빵이면서도 정작 앞에서는 나서지 않는 엄마 같은 존재 감였다.
아무 누구에게나 나이 많으면 형이고 언니고
누나보다 어리면 동생이었다.
새 식구에게는 친절한 안내자 였고.
지리산을 부탁하면 누구보다 든든한 산꾼였다.
소통이 어려워질 때 누나의 핸드폰을 열어 볼 일이 있었다.
당연하지만 지리 99 식구의 연락처가 모두 다.
지리 99가 산유화였다는 등식이다.
왜 그리 못됐는지~~
삐지기도 잘했다.
이리 빨리 가실 줄 알았다면 대들지 말고 더 착한 동생이 됐어야 했는데.
하늘나라 가시는 날 ~~
말이 열렸다. 그래서 안심했는지도 모른다.
모 그리 힘들게 살았던지?
빨리 회복해서 지리산 가서 집 얻어 재밌게 놀자고 했다.
오후가 되어 아들 현준이에게 간호를 맡기고 내일 일찍 올께 하고
집으로 돌아와 옷 벗고 샤워를 하려는데 현준이 에게 핸드폰이 온다.
아저씨 빨리 오셔야겠어요..... 누나와 헤어진 지 한 시간 반만이다.
그렇게 누나는 하늘나라에 갔다.
지리산을 내려간다.
16년 동안 나의 지리산은 대부분은 누나와의 동행였다.
누나가 부재된 산행의 일정을 만들며 한쪽 부분이 없어진 낯선 지리산을 가져야 한다.
한상철이 작년 12월 설악산에서 조난사 한 후 설악산이 멀어졌다.
지리 99 식구들이 지리산에 들며 전화나 문자를 준다.
누나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제 보내 드려야겠다.
지리산에 편안 휴식으로 모실 계획을 세운다.
이영숙 산유화 추모식
벽소령산장 하늘이 두꺼운 구름으로 눌려져 있다.
간간이 비가 뿌리고~~
비 소식에 주말 산꾼들이 적은 게 외려 고마웠다.
아무도 없는 식당에 들어가 누나의 얼굴이 담긴 현수막을 벽에 붙였다.
젤 큰 형님이신 임우식 형님은 어제 벽소령에서 주무시고 우리들을 맞이하셨다.
형님께 추모식 개요를 설명드리니 지리 99 식구 아닌 산꾼들한테 폐가 될 수 있으니 간소하게 해라. 하신다.
다행스럽게 식당에는 우리 식구 24명 모였다.
묵염을 드리고... 추모사 아닌 인사 글을 읽었다.
수야가 추모사를 읽는다.
몇 줄 읽다가 목소리가 떨린다.
시키~~ 너무 슬프게 만들지 말라 했거를~~
장례식 때 터졌던 통곡이 나올까 봐 문 밖으로 나가 심호흡을 했다.
사람들을 울린다.
산용호 적은 추모시를 봄이가 읽는다.
봄이도 울먹거린다.
유족을 대신해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이제 가라고 했다.
그냥 지리산에 모시겠다고 이야기했다.
누나 편히 쉬셔요.
마음이 무거워서 술이 안 취한다. 다행이지~~~
수야가 현수막과 누나의 비니를 모아서 지리산 햇살 좋은 곳에 묻어 주자 한다.
담에 누나 누워 있는 나무 밑에서 흙 조금 담아 올 테니 같이 묻자고 의견을 맞췄다.
지리산에 비가 내렸다.
누나를 모시는 지리산에~~~
산유화
(소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산유화
(남인수 노래)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피네
봄이 오면 새가 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마는 님은 어이 못 오시는가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산에 산에 꽃이 지네 들에 들에 꽃이 지네
꽃이 지면 피련마는 내 가슴은 언제 피나
가는 봄이 무심터냐 지는 꽃이 무심하더냐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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