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칠불사 은행나무가 곱게 물든 걸 보니,
우리 동네 은행나무도 오랜만에 단풍이 잘 들었겠다 싶었습니다.
해서 제 본적지에 있는 함안향교로 은행나무 단풍 구경을 갑니다.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하는 은행나무
지정일로부터 42년이 지나 근 600년 된 나무이니 조선조 초에 심은 나무입니다.
뒤에 나오는 함안 향교 역사와 얼추 비슷합니다.
은행나무(銀杏--, 학명: Ginkgo biloba 깅크고 빌로바[*])는 겉씨식물에 속하는 낙엽성 교목이다.
공손수(公孫樹), 압각수(鴨脚樹)로도 부른다.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가을에 잎이 노랗게 물들며, 가로수 등으로 널리 활용된다.
은행나무문에서 유일하게 멸종하지 않고 현재까지 명맥이 이어져 온 나무이다.
이름
"은행(銀杏)"은 "은빛 살구"라는 뜻이다. 흔히 열매로 여겨지는 은행나무 씨가 살구와 비슷하며 표면이 은빛 나는 흰 가루로 덮여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냄새가 매우 심하다.)
은행나무는 30년 가까이 자라야 씨를 맺는데, 따라서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나무"라고 "공손수(公孫樹)"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은행나무 잎이 오리발(鴨脚)과 닮았다 해서 "압각수(鴨脚樹)"로 불리기도 한다.
은행알은 "백과(白果)", "압각자(鴨脚子)" 등으로도 부르며, 은행나무 목재는 "행자목(杏子木)"이라 부른다.
역사
신생대 에오세(5,580만 년~3,390만 년)에 번성하였던 식물로, 현존하는 종은 은행나무문 식물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어 "살아있는 화석"으로도 불린다.
《산림경제》에는 "둥근 종자를 뿌리면 암나무로 되고 세모지거나 뾰족한 종자에서는 수나무가 생겨난다고 하고,
수나무를 암나무로 만들려면 암나무의 가지를 얻어 수나무줄기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넣어주면 된다."는 기록 및
"열매를 과식하면 소화기를 해치고 중독성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
함안향교 풍화루
분포
[편집]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기온이 낮은 고원지대(해발 500m 이상)와 한반도 북부를 제외하고는 전국에 분포한다.
인간의 손길이 잘 닿지 않는 외딴 곳에서 야생 상태의 은행나무를 발견하기는 어렵다.
야생 은행나무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중국 저장성 일부 지역에서 자생하는 야생 은행나무가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도 오래전부터 인간의 활동이 있던 곳이라, 야생 개체임을 분명히 하기는 어렵다.
은행나무의 열매는 무거워 널리 퍼지지 못하며, 악취가 심해 동물에 의해 이동되지도 못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은행나무는 오래전부터 인간에 의해 심겨진 것이다.
줄기
은행나무의 줄기는 곧게 자라며 나무껍질은 그물 모양으로 갈라져 우둘투둘하다. 가지가 잘 갈라지는데 긴 가지와 짧은 가지 2종류가 있다.
심재와 변재는 수지구가 없고 속이 치밀하게 차 있으며, 심재의 경우 연한 황색을 띤다.
명륜당(유교 교육기관)
잎
소나무, 향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등 대부분의 겉씨식물은 잎이 침상(針狀)인데, 은행나무의 잎은 부채꼴로 중간부위가 갈라진다.
은행잎은 긴 가지에서는 어긋나며 짧은 가지에서는 3~5개씩 조밀하고 어긋나게 달려 마치 한곳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인다.
또 긴 가지의 잎은 깊이 갈라지며 짧은 가지의 잎은 가장자리가 밋밋한 것이 많다.
봄에 새잎이 돋고 가을에 노랗게 단풍이 물든 후 낙엽을 떨군다. 잎이 떨어지면 옆흔과 함께 관속흔도 남는다.
꽃
은행나무는 암수딴그루(한국 한자: 雌雄異株 자웅이주)로, 암나무와 수나무가 있다.
은행나무의 모양을 보고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곁가지와 원줄기가 만드는 각도의 크기로 가능하다고 한다.
수분기는 4~5월 경이며 잎과 함께 꽃이 핀다, 암그루의 암꽃에는 6~7개의 T자형 화축 끝에 2개의 배주(胚珠)가 달리고,
수그루의 웅화수(雄花穗)는 1~5개씩 달리고 대가 있는 다수의 소포자낭(小胞子囊)이 달린다.
은행은 암나무에서 열리며, 수나무에서 꽃가루가 날아와 수분한다. 씨를 맺기 전까지는 암수를 구별하기가 힘들었으나,
2011년 국립산림과학원에서 은행잎을 이용해 수나무에만 존재하는 유전자 부위를 검색하여
1년생 이하의 어린나무까지 암수를 정확히 감별하는 방법을 개발하였다.
종자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며, 흔히 열매로 여겨지는 은행알은 식물형태학적으로는 씨(종자)이다.
9~10월 무렵에 두 개의 배주 중 하나만이 성숙한다.
종자는 크게 바깥쪽 육질층(육질외종피, sarcotesta)과 딱딱한 중간 껍질(후벽내종피, sclerotesta),
그리고 그 안쪽의 얇은 껍질(내종피, endotesta)로 이루어져 있다.[9] 그 중 황색의 육질외종피는 빨리 썩으며,
여기에서 나오는 악취는 멀리 퍼져 각 지역에서 암나무와 관련된 민원이 매우 많이 발생한다.
또한, 빌로볼과 은행산이라는 점액 물질이 있어 인체에 닿으면 염증을 일으킨다.
후벽내종피는 은백색을 띠며 난원형이고 능선 2~3개가 있고, 끝이 뾰족하며 밑부분이 둥글다.
또, 나무가 자란 지 20년 정도를 넘어야 비로소 성숙해 수분을 맺고 은행이 열릴 수 있게 되어, '손자나무'(公孫樹)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7]
생태
은행나무는 수형이 크고 깨끗하며, 오래 살아 고목이 많다. 다 자란 은행나무의 높이는 보통 10~15m에 이르나,
간혹 높이는 40m까지, 지름은 4m까지 자라는 것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로, 나무의 나이는 약 1100년이고 높이 41m, 둘레 11m에 이른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그 외에도 오래된 은행나무가 많은데, 충청북도 기념물 제5호인 청주 압각수는 나이가 9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가 30m, 둘레가 8m이다.
은행나무는 인간의 도움 없이 번식이 어렵다. 씨가 무겁고 커서 바람 등으로 널리 퍼지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특유의 냄새 때문에 다람쥐와 같은 동물의 힘을 빌려 번식하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충효관
재배
은행나무는 씨에서 묘목을 키우기가 쉽고, 묘목은 옮겨 심어도 잘 살며, 어릴 때의 성장이 빠른 편이다.
꺾꽂이로도 번식이 잘 된다. 번식용 종자는 가을에 땅속에 묻어두는 이른바 노천매장법을 적용하는 것이 좋다.
품종
- 큰잎은행나무(G. biloba 'Laciniata'): 잎이 크며 톱니가 크고 그 수도 많아서 다섯 갈래로 갈라진 것처럼 보인다.
- 무늬은행나무(G. biloba 'Variegata'): 잎에 무늬가 있다.
- 늘어진은행나무(G. biloba 'Pendula'): 가지가 아래로 늘어진다.
쓰임새
또,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 강하므로 방화수로도 이용된다.
줄기
은행나무 목재인 행자목은 황백색이며 조각재·고급가구재로 쓰인다.
열매
은행은 구워 먹거나 전골재료로도 사용된다. 한방에서는 천식과 기침을 그치게 하는 데 쓴다.
은행나무의 씨에는 인체에 유해한 성분도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종전에는 이 유독 성분이 청산칼륨과 유사한 시안화물의 일종으로 추측이 되었지만
1985년 MPN (4-methoxypyridoxine)이라는 물질임이 밝혀져 깅코톡신(Ginkgotoxi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은행의 열매 날것 한 알에는 80µg의 MPN이 있고(MPN은 열에 안정적이므로 은행 열매를 가열해 조리를 해도 그 양의 변화는 거의 없다.)
하루에 몇 알까지가 안전한 섭취량인지에 대한 확실한 정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보도된 치명적인 중독 사례들을 보면 15~574알의 섭취만으로도 치사한 경우들이 있다.
치명적인 중독 사례의 상당수가 유아나 아동이며 치사율이 27% 정도였다.
그러므로 어린이의 경우에는 하루에 5알 이상을 먹거나 장기간에 걸쳐 섭취하는 경우에는 중독 증상이 발생할 수가 있고
사망에도 이를 수가 있으므로 특히 주의해야 한다.
은행 열매에 의한 중독은 비타민 B6(pyridoxine)로 어느 정도 완화되거나 예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은행잎에서 추출되는 플라본글리코사이드는 혈액순환 개선제로 쓰인다.
은행나무 달인 물을 농약으로도 쓰며 은행잎을 망에 가득 넣고, 정화조에 담가두면 모기 유충(장구벌레)이 죽는다고 한다
문화
은행나무는 한국 민속과 설화에 자주 등장한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는 신라의 마의태자가 심었다는 설과 의상대사의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설이 전해진다.[11]
공자묘의 뒤쪽에 많이 심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문묘·사단·절 등의 행단(杏亶)에 살구나무를 심은 것이 잘못 전하여진 것으로 보인다.
행단은 학문을 수양하는 곳으로 은행나무는 독특한 향을 내어 벌레가 없는데,
공자는 그 아래 단 즉 마루를 놓고 제자들을 가려쳤다는 것에 유래되었다.
《은행나무 침대》라는 이름의 판타지 멜로 영화가 있다.
평일인데도 소문이 났는지 큰 카메라 들고 사진 찍으러 온 사람이 몇몇 보입니다.
함안향교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에 있는 향교. [개설] 함안향교(咸安鄕校)는 1392년(태조 원년)에 홍문관(弘文館)의 인가를 받아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파수리 청곡에 창건되었다고 보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가 불확실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따르면, 조선 초기에 설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봉성동의 악어담에 이건되었다가 1595년(선조 28)에 정구(鄭逑)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고 한다.
1587년(선조 20)에 정구가 편찬한 『함주지(咸州誌)』에는 함안향교가 명륜당(明倫堂)[6칸], 좌우 협실(夾室)[각 3칸],
동재(東齋)[8칸], 서재(西齋)[7칸], 남루(南樓)[6칸], 주고(廚庫)[5칸], 교아(校衙)[13칸] 등이 있었다고 전한다.
[설립 목적]
함안향교는 조선 왕조가 건국된 이후 성리학의 보급과 문풍(文風)을 진작시키기 위해 모든 고을에 하나의 향교를 설치한다는 1읍 1교의 원칙에서 설립되었다.
함안향교는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선현들을 기리는 교화 활동과 함안 지역의 자제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국가가 설립한 중등 유교 교육 기관이다.
함안향교에서 제향하고 있는 인물들은 공자,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자(子思子), 맹자(孟子) 등 5성(聖)과
정호(程顥), 정이(程頤), 주희(朱熹)의 송조 3현(宋朝三賢)이 있다.
또한 동국 18현(東國十八賢)으로 최치원(崔致遠), 설총(薛聰), 안유(安裕), 정몽주(鄭夢周), 정여창(鄭汝昌), 김굉필(金宏弼), 이언적(李彦迪),
조광조(趙光祖),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성혼(成渾), 이이(李珥), 조헌(趙憲), 김장생(金長生), 송시열(宋時烈), 김집(金集),
박세채(朴世采), 송준길(宋浚吉) 등이 있다.
공자 등 배향된 유학자 제를 지내는 대성전
[변천]
창건 연대는 미상이며, 1595년 정구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한 이후 1596년(선조 29)에 동무(東廡), 서무(西廡), 내삼문(內三門)을 증축하고,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을 건립하였다. 1880년(고종 17)에는 대성전(大成殿)을 중건하였다.
1906년에는 함안향교와 칠원 향교(漆原鄕校)를 병합하였으며, 1920년에는 문묘(文廟)와 명륜당을 중수하였다.
1950년 6·25 전쟁으로 향교가 소실되어 1959년 명륜당이 중수되었으며 칠원 향교를 복원하였다.
1960년에는 대성전 내삼문을 중건하였다. 1962년에는 고사(庫舍)[3칸]를 복원하고 담장을 보수하였다.
1966년에는 대성전을 보수하였으며, 1968년 동재를 복구하였고, 1974년에는 서재를 중건하였다.
단청과 보수 공사 등이 꾸준히 진행되어 오면서 2010년에는 현판 개수 및 보완을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함안향교에서는 매년 양력 5월 11일과 9월 28일에 석전제(釋奠祭)를 거행하고 있다.
[현황]
함안향교는 야산을 등지고 들판을 마주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이다.
평지에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강학 영역이 위치하고, 제향 영역은 경사면의 높은 지형에 배치하여 경건함을 강조하고 있다.
제향 영역은 대성전의 좌우에 동·서무가 대성전을 향하여 나란히 배치된 형식인데, 급경사지(急傾斜地)라는 지형적 요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평지에 조성된 강학 영역은 동·서재의 거리가 멀고 풍화루가 간략하게 구축되어 협소한 제향 영역과는 달리 개방성이 강조된 형식이다.
현재 주요 건물은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관리사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의 기와 맞배지붕이며, 명륜당은 정면 5칸의 기와 팔작지붕이다.
동재와 서재도 각각 정면 4칸의 기와 팔작지붕 양식이다.
함안향교는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연인, 부부, 친구들 등 만추를 만끽하려는 객이 많습니다.
한 동네, 제가 다니는 교회 바로 이웃에 있는 곳인데에도 여러 해 만에 가봤습니다. ㅎ
함안 향교 지근 거리에 있는 제가 다니는 함안읍교회
1,906년 2월 설립해 나이가 자그마치 백열여덟 살입니다.

1944년 11월 1일, 일제 강점기 막바지,
우리 아부지, 어무이(스물다섯, 열여덟 꽃다운 나이) 혼인식 사진입니다.
함안읍교회 마당입니다.
맨 왼쪽이 아버지 초등 동기이자 한국 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문학평론가 조연현 선생입니다.
강학중 군, 김정자 양 화촉성전 만세! 조연현 창 이라고 쓴 축하 메시지를 들고 있네요.
가야읍에서 우리 동네 함안면으로 가는 79번 국도.
역시 올해 단풍은 좋습니다.
보아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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