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불효자는 웁니다.

금농 2023. 4. 4. 18:18

1,제목: 불효자는 웁니다 (상봉)

2, 언제: 2,018. 9. 26. (수)

3, 누구와: 아내와

4, 코스: 순두류- 법계사- 상봉- 장터목- 중산리 (약 12km)

5, 소요시간: 7시간 13분.

6, 시간대 별 구간

    07: 18.- 환경교육원 입구

    08: 31.- 로타리대피소 (~ 08: 48.)

    10: 18.- 상봉 (~ 10: 24.)

    11: 25.- 장터목대피소 (점심~ 11: 47.)

    12: 45.- 유암폭포

    14: 31.- 탐방안내소

7, 산행소묘

 오월 하순 산정무한 행사 날 지리산에 들고 넉 달 넘게 이 핑계 저 구실로 쉬다가 모처럼 산행에 나섭니다.

 

 

 

07: 18. 환경교육원 입구에서 출발합니다.

 

 

오른쪽 몽당치마 예쁘장한 아이가 제 어머니 어릴 적 모습입니다.

1,927년 5월 30일에 태어나셨으니 1,930년대 초쯤의 사진이겠지요.

왼쪽의 어른은 사진이 망가져 모습도 모르고 누군지......

 

오늘은 집안 얘기 좀 하겠습니다.

추억여행 하는 셈치고 양지하시고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촛대승마

 

 

조금 더 커서 모습입니다.

세일러복, 해군 수병 옷인데 여학교 교복으로 많이 입었었지요.

 

 

1944년 11월 1일, 혼인식 사진입니다.

함안읍교회 마당입니다.

 

맨 왼쪽 키가 작은 분이 한국 문학계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고 조연현 선생입니다.

선친과 초등학교 동기 절친이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선친도 해방 전 문예지에 추천을 받아 등단하여 단편소설, 시, 등 여러 편을 남기셨습니다.

 

어머니 옆은 막내 외삼촌.

이모는 그 해 태어나서 갓난 아기라 등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신랑 스물다섯, 신부 열여덟, 꽃다운 나이입니다.

아버지 사진에 제 모습이 느껴지십니까?

 

 

새댁시절입니다. 고모님과.

모두가 신산했던 시절인데 표정이 밝네요.

옆의 나무틀은 새끼 꼬는 기계.

 

 

6.25 한국전쟁 통에 불탄 집을 헐고 새로 집을 짓는 중입니다.

아버지 삼십대 중반, 어머니 이십대 후반.

 

어머니 손 잡고 있는 저, 흰 상의는 사촌동생, 할머니께서 안고 있는 제 두 살 아래 동생.

오른쪽은 숙부, 숙모님. 뒷쪽은 삼종숙부님.

 

 

로타리 대피소에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오릅니다.

여기까지 희미하게 아래 세상을 보았고 이후는 계속 구름 속을 노닐었습니다.

 

 

큰외삼촌과 누님, 남동생과.

 

 

이날 기쁜인연을 여럿 만났습니다.

맨 처음 법계사 바로 위에서 같은 함안면 후배를 만났고,

두 번째로 사자령 위에서 유랑자님을 만났습니다.

단풍사진 찍으러 꼭두새벽에 올랐는데 운무로 꽝!이었답니다.

 

 

1960년도 할머니 회갑사진입니다.

제 초등학교 5학년 때입니다.

그야말로 마당에 멍석을 깔았군요.

형제간 수를 세어보니 한 명 모자라 가만히 생각하니 막내동생 나기 한 해 전이군요. ㅎㅎㅎ

 

 

세 번째 인연, 진주아재, 객꾼.

 

 

 

촌에서 말깨나 하는 아지매들의 해운대 나들이입니다.

한복에 고무신.

 

 

구절초 쑥부쟁이는 아직 한창이고 산오이풀은 말라갑니다.

 

 

우리가 세들어 살던 주인집 아이들과 아이 이모.

한 집에 살면서 할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아 미국에서, 경기도에서 문병을 다녀갔습니다.

남자아이는 목사, 두 여자아이는 남편이 목사입니다.

 

 

네 번째 인연, 하로동선과 왼쪽은 닉네임을 들었는데 까묵었습니다. 줄여서 산사?

앞의 세 팀은 모두 진주팀인데 따로 왔군요.

지나치는 하로동선을 부르니 깜짝 놀라며 형님은 여전하시네예, 합니다.

많이 늙었는데.......

 

 

막내아들 고등학교 졸업사진.

 

 

산부추

 

 

어머니의 첫 손녀. 제 동생이 두 해 먼저 혼인해 아이를 먼저 낳았습니다.

조카의 두 달 된 모습이네요.

손자는 사진의 날짜보다 엿새 후에 태어납니다.

 

 

하늘 가는 길

 

 

외손자, 외손녀도 키웠습니다.

 

 

1987년, 어머니 회갑 때입니다.

식구가 많이 늘었습니다.

사진사가 저라 제 얼굴이 없네예.

 

 

애기나리님, 지리바꽃과 투구꽃의 구별법이 뭡니까?

씨방이 어쩌고 하던데.

 

 

 

출발 세 시간만에 상봉에 섰는데 바람이 세차게 불어 날아가려고 합니다.

손도 얼어 얼얼하고.

오랜만에 산에 오니 겉옷 준비하는 것도 잊아묵고. 쯧쯧쯧. 

 


할멈 회갑에 아버지가 불콰합니다.

 

 

상봉

 

 

외할아버지와 외삼촌, 이모.

작은 외삼촌 두 분은 먼저 돌아가시고 이제 오른쪽 큰외삼촌과 이모만 남았습니다.

 

 

 

파안대소.

제 선친도 우스개소리 잘 하셨지만 외가식구도 수준급 코메디언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시골이지만 1,906년에 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112년 전에.

외할아버지께서 마을마다 골짝마다 북을 메고 다니면서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외할아버자의 손자, 제 외사촌 동생이 할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목사가 되어 호주에서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기독교인이 아니셨는데 교인 처녀와 혼인을 하면서 앞으로 교회 나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교회에서 혼인식을 했지요.

그 약속은 삼십 몇 년이 지나 지키셨지만.

 

 

1,994년 금혼기념사진입니다.

 

 

제석봉을 지나며.

 

 

제 둘째가 같이 입바람을 불고있네요.

생일축하케익 불끄는 장면을 보면 이렇게 옆에서 거드는 사람이 꼭 있지요.

 

 

 

장터목에서 점심을 먹고 갑니다.

 

 

큰딸 권사 임직.

 

 

 

장터목에서 조금 내려가니 시야가 트입니다.

 

 

큰딸 회갑연.

 

 

유암폭포.

 

 

작은 손자와 고려신학대학원 견학.

 

 

다섯 번째 인연, 중부경남팀의 박백현.

혼자서 지리산 골짝, 능선을 휩쓸고 다닙니다.

중경팀에는 백산, 연하, 애기나리, 저 등, 홀산족이 많습니다.

 

 

올해 유월, 아흔 둘 생신 때 큰손부가 쓴 기도문을 보고 계십니다.

귀가 어두워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해 보여드렸습니다.

 

 

하산하여 법계교에서 올려다봐도 상봉은 여전히 운무 속입니다.

 

 

자녀 일곱을 생산하셨는데 제 누님 위에 먼저 아들이 태어났지만 어릴 때 병으로 죽고,

제 바로 밑의 동생도 군대 제대까지 하고 사고로 또 아들을 잃는 참척을 당하셨습니다.

 

노년에 허리, 무릎 등 근골격가 급격히 나빠지셔 먼저 지팡이부터 짚으셨습니다.

스틱 하단부 고무가 잘 닳는다고 하셔서 산행 때마다 길가에 버려진 고무를 보이는 족족 주워왔는데 이번에 보니 여남은 개가 남아있었습니다.

 


다음은 지팡이를 버리고 유모차를 밀고 다니셨습니다.

전에 제가 일하던 쓰레기처리장에서 멀쩡한 새것을 많이 가지고 와 온 동네 할머니들 많이 나눠줬지요.

 

유모차를 밀고 새벽기도에 다니시다가 손잡이를 놓쳐 몇 번 넘어지는 바람에 유모차도 필요없게 되었고,

골목까지만 밀고 나가 제 차로 교회에 다녔습니다.

나중에는 다리 힘이 너무 없으셔 교회 출석도 포기하셨지만.

 

 

 마지막에는 휠체어를 아내가 밀고 동네 목욕탕에 다녔는데 목욕탕에서도 넘어지시니 그마저도 방문 목욕서비스로 바꾸었습니다.

 

 

2,016년 여름, 증손자가 태어났습니다.

[산꾼아들]의 아들이니 산꾼손자입니다.

 

 

이때만 해도 어머니 건강이 좋으셨습니다.

보청기를 끼고도 대화가 잘 안되었지만 하늘에서 떨어졌나, 땅에서 솟았나 하시면서 증손자의 태어남을 무척 기뻐하셨지요.

마지막 까지 우리 예삐는 와 안 오노? 하셨습니다.

 




손자는 커가는데 어머니는 날로 달로 수척해져 갔습니다.
그렇게 한 세대는 가고 또 다른 세대가 옵니다.
 
토요일 산행할 때 어쩌다가 집에 있는 날은 오늘은 와 산에 안 갔노? 하시던 어머니께서,
출근 때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 하면 오냐 잘 갔다 오너라 하던 총기 있던 어머니께서,
온갖 세상 걱정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마지막에는 시간 개념이 없어지고 공간 개념도 흐려졌습니다.
 

 

치아가 나빠 밥에서 죽으로, 다시 미음으로,

그리고 마지막에는 숟가락질도 힘들어 빨대로 겨우 마셨습니다.

기력은 당연히 급속도로 떨어지시고.

 

 

앞의 아이들이 이렇게 중년으로 자랐습니다.

오른쪽이 미국에서 신랑이 목회를 하고 있는데 마침 한국에 나와 어머니 보러 왔습니다.

 




 

마지막 한두 달을 제외하고는 귀가 어두워 안들리셔도 티비는 계속 틀어놓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제 의견을 물어보시는 데 건성으로 답해드린 게 죄스럽습니다.

 

중동 어느 나라, 남미 어느 나라에서 무슨 사고나 사건이 뉴스에 나오면 그 나라 찾는다고 하셔 쓰레기장에 마침 들어온

지리부도를 구해 드렸더니 자주 보셨습니다.

 

젊었을 때 초등학교만 마치셔도 일본어를 배워 일본잡지도 보시고 우리 어릴 때 아이들 모르게 일본어로 부부가 대화도 하더군요.

 


증손자가 두 돌이 지나니 말귀를 알아들어 시키는 대로 왕할머니께 배꼽인사로 작별을합니다.

왕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거의 큰절 수준이네요.

 

돌아가시기 닷새 전 할머니 안아드려라 하니 가서 보듬는데 힘이 없으신 할머니는 증손자 안고 그만 옆으로 넘어지시고.....

 


 

영정사진으로 쓰려고 십여 년 전에 찍었는데 수척하신 모습 보다가 너무 젊게 나와 이상합니다.

 

2,018년 9월 13일,

어머니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시고,

흙에서 온 육신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셨습니다.

69년 전 이 세상에 태어나  따뜻한 젊은 어머니 품에 안겼던 저의 품에 안겨서.

 

젊었을 때 아버지께서 우리 형제자매들 모두 마산으로 유학시킨다고, 또 여러 사정으로 빚만 잔뜩 진 채 퇴직을 하시고

저는 제대후 다행히 직장을 구해  집안의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부모님께서 한평생 고단하게 사신 삶이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이웃 사랑과 헌신하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주셨습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역시 오랜만의 산행이라 배터리 체크도 안 해 장터목에서 충전하라는 메시지가 떴습니다.

다 아시는 코스라.

 

시답잖은 개인 집안사 늘어놓아 죄송합니다.

이렇게 어머니를 추모해봅니다.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18 Comments
최규다  2018.09.27 20:39  
창밖에  큰 달을  봅니다
가슴이 먹먹하니  아려옵니다
찬공기 탔일까요 ㆍ몸도 추워지고
콧끝이 찡하니  ㆍ
눈물때문에  추운가 봅니다
먼 하늘  가신  어머님  명복을 빌어봅니다
편안히  영면하소서‥‥
답지  2018.09.27 20:41  
그래도 돌아가시면, 서운한 마음은 똑같지요.

가족사, 구석 구석에 자랑스러움과 복스러움과, 애정이 철철 넘쳐 흐릅니다.

복된 가정에서 여지껏 행복해 하셨듯이, 남은 50여 년 이상의 세월동안 색다른 만복을 누리십시오.

형수님과 함께 상봉을 올랐으니, 대한민국의 어느 산자락인들 못 오르겠습니까? 존경합니다, 형수님 & 형님.
달님안녕  2018.09.27 21:00  
평생을 자식들과 주변을 위해서 새벽마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제곁을 떠나신후 꿈에서라도 보고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 깨가 쏟아지는지 통 소식이 없으시네요.
형님의 먹먹함을 같이하겠습니다.
안정민  2018.09.27 22:25  
제 어머니도 1927년 생이시라 다른 분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호원 형 어머니는 복이 많으셨던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제 어머니는 결혼 1년 만에 남편을 사별하고 전쟁과부로 살아오셨답니다.
피어나기도 전에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내 아버지가 불상해서 재혼도 못했다고 합니다.
내 어머니는 16년 전에 평생 그리워 하시던 신랑 곁으로 가셨답니다.
내 아버지와의 결혼에서 얻은 유일한 자식인 나를 남겨놓으시고...
호원 형 어머니는 다복하신 분이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살아 생전처럼 편안한 영생이 있으실 것으로 믿습니다.
호원 형 어머님의 명복과 영생을 빕니다.
천마 올림.
꼭대  2018.09.27 22:29  
효자 효부 덕분에 행복하게 사시다가 좋은 곳에 편히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부모를 여윈 자식 마음은 비통하기 마련이라 그동안 잘 모신 <금농>님과 형수님께 마음 깊이 위로를 전해드립니다.

그나저나, 와~ 엄청 미인이셨네요. 저 당시 교회 다니셨으니 집안 또한 아주 신식으로 깨우쳤겠습니다. 양친의 모습이 모두 <금농>님께 비치는 것 같습니다. 인물 좋으시고 넘치는 재치를 물려 받으셨으니 큰 유산을 받으셨네요.
오해봉  2018.09.28 00:02  
추억속의 사진을보면서  가슴속 어딘가가 찡한글을 읽었습니다
천천히 두번을 보아도 좋기만 합니다
강호원님 어머님은 좋은곳으로 가셨을것 같습니다
여러해전부터 어머님이 가끔 등장하시는 산행기를 읽었기에 
효자인줄은 알았지만 참으로 훌륭한 아들이시네요
삼가 강호원님의 어머님 영전에 명복을 빕니다.
엉겅퀴  2018.09.28 08:20  
지나고 나면 불효자 아닌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
또 형님 같은 효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효자를 배우자로 둔 형수님도 엄청 고생하셨겠지요.

두분이서 더 자주 어울리고,
산에서 더 자주 뵐 수 있기를 빕니다..
애기나리  2018.09.28 08:29  
투구꽃 자방을 골돌이라고 부르는데요.
골돌 세개가 사이좋게 붙어있으면 투구꽃이구요.
애기나리  2018.09.28 08:34  
골돌 다섯개가 서로 떨어져 있으면 지리바꽃이라고 부른답니다.

내 생각에는 그깟걸로 구분을 하나 싶습니다.
걍 투구꽃으로 합쳐버리면 될것 같은데 식물학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제 할아버지께서 아흔아홉까지 사셨습니다.
흔히 흰백자를 써서 백수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저희 집에서 한편 슬프기는 하지만 동네 잔치를 했었답니다.

모친께서 귀한 신앙유산을 물려주셨네요.
산거북이  2018.09.28 08:58  
한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을 사시가다 영면에 드셨네요...
감동입니다...

날씨마저도
선배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둣 운무로 가득합니다

수고 많으셧습니다.. ^^
심마니  2018.09.28 09:04  
伯兪之泣(백유지읍}

한나라때 효자 백유는 종아리를 맞으면서도 쇠약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슬퍼했다는데
이제 종아리를 들 어머니마저 안계시니 그 슬픔이 얼마나 크시겠습니까

하늘이 무너지는듯한 큰 슬픔,
일생일사라 생각하시고 힘내십시오.
시소  2018.09.28 09:58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어머님을 모시고 있는 불효자입니다 저에게도 이별의 시간이 오겠죠 금농님 힘내세요!
백산  2018.09.29 09:10  
금농 선배님 내외분 오랜 세월 연로하신 모친 모신다고 애 많이 쓰셨습니다.

빛바랜 가족사진에서 가족사와 가족애를 읽습니다.
옥국장  2018.09.30 13:39  
산행기와 가족사를 함께 쓰셨군요.
저를 돌아보게하는 아름다운 글과 사진입니다.
어머님의 명복을 빕니다.
말로만  2018.09.30 14:23  
울엄니, 우리나라의 조상님들 생각 많이 납니다.
 고맙네요~~^!^
말로만  2018.09.30 14:26  
울엄니, 정말 힘들게 나라를 지키고 일으키신 선조님들 생각 많이 납니다.
 고맙네요~~^!^
뽓때  2018.10.01 22:25  
오랜시간
노모를 모시느라 수고가 많어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길 모셔드리느라  또 고생하셨고요.

어머니 편히 쉬시고 계실겁니다.
명복을 빕니다.

그리고 오랜세월
형님보다

어머님을 모신 형수님 참 고생 많어셨습니다.
자전거 타신다고 행복해 하시던 그 모습
눈에 선합니다.

두분 산행하신 모습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山용호  2018.10.02 14:26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런
맴때리는
산행기는 첨입니다.

이건
가혹한
옥고입니다.

저도
엊그제
위독한 어머님
병원에 모셔놓고 와서는
내내 잠못듭니다.

산자여
모두모두
아프지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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