琴農說
- 짐짓 옛사람의 어투를 흉내내어
어느날 강호원 선배가 나에게 호를 지어 주기를 청하면서 말하기를,
“나이 들어가면서 이름 부르기도 뭣하고 해서 호를 지으려 하는데,
그대가 옛일에 좀 밝으니 하나 지어 주시게나.
울림이 좋은 것으로~~”
하였다.
나는 강호원 선배를 모른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그의 호를 짓겠는가?
그는 함안에서 태어나 그곳을 떠나본 적이 없다.
학교와 직장생활은 물론 퇴직 후에도 고향에 눌러 살며,
고희(古稀)에 가까운 나이에도 지극한 효도로 노모를 모시고 사는 그는, 드물게도 옛사람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산을 좋아하며, 무엇보다도 사람을 좋아한다.
또한 그는 스스로 족함을 알아 늘 그의 정신은 자유롭고 그의 삶은 유쾌하다.
사람의 향기와 울림은 천 리를 간다 했으니,
나는 그를 모르지만 이로써 세상사람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인연이 닿으면 만나게 되고 뜻이 통하면 벗이 되는 법.
넓은 세상 수없이 긴 시간 중에 같은 시대, 영혼 깊숙히 사랑하는 지리산에서 만났으니
이 어찌 우연이랴? 그래서 나는 「금천(琴川)가에서 농사지으며[農], 거문고[琴]를 안고
한가하게 늙어가는, 금슬(琴瑟) 좋은 부부」를 그리며, 號를『금농(琴農)』이라 지으려 한다.
옛사람들은 所處以號라 하여 인연 있는 곳의 지명에서 호를 많이 따왔으니
나도 그가 사는 비봉산 아래 북촌의 금천(琴川)에서 琴을 취하고,
또 농사는 천하의 큰 근본이라 했으니 고향에 뿌리내려 근본을 잘 지키고 있는 데에서 農을 취하였다.
허리 굽혀 논밭에서 일하는 것만 농사랴? 뿌리고 거두는 일이 모두 농사라면
그의 효성과 자녀농사 행복전도,
이만하면 그를 훌륭한 농사꾼이라 일컬을 수 있지 않겠는가?
게다가 거문고의 맑은 울림처럼 주변을 즐겁게 만들고 있으니 그는 이미 금농(琴農)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거문고처럼 아름다운 소리로 세상과 소통하고
욕심을 적게 하여 행복한 농사꾼으로 사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이에 琴農說을 쓴다.
2014년 늦가을, 후배 이재구 拜
한학자는 무신..? 저도 많이 쑥쓰러운데 형님께서 마음에 든다 하시니 다행입니다.사실 저는 호를 지어본 적도 없고, 호에 관한 글도 써본 적이 없어 떨리는 마음으로 호를 짓고 금농설(說) 초고를 써서 손좀 보시라고 형님께 보여드렸더니 바로 공표하는 바람에 이후 (형님 말씀 빠뜨린 것도 생각나고 하여) 두어번 수정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형님의 인간적인 면에 비추어 오히려 제 글이 미진한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술도 조금 아껴서 오래도록 드시고 많은 분들과 좋은 만남 이어가기를 빕니다^*^.
인터넷 문화가 익숙치 않은 저 까지만 해도 닉에 님이란 접미사를 붙여 불으는 것이 무착 어색합니다.
예전에도 지리99에 통칭에 대한 저의 원칙을 썰 풀었는데.
1962년 생인 저의 기준으로 남자 선배는 59년생까지 형 58년 이하는 형님.
금농형님 같이 한바퀴 돈 12살 위쪽의 분들께는 선생님이나 높일수 있는 극존칭을 사용합니다.
여성 선배분들은 무조건 누나입니다.~~간혹 까칠한 분한테는 누님이라 불러 드리기도 하고...
지리99의 위쪽의 연장자시며 호적계장.지리99의 최다작의 필진....으로 성함이 많이 불리워지는
큰형님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죄송?스러웠는데 좋은 일이 일었습니다.
금농 ~~ 뜻 만큼 형님의 이미지와 잘 어울리십니다.
재구형~~꼭대형님도 멋진 號 하나 지어주시죠.
혹 대외적 지리99를 앞세울 때 나이가 환갑을 바라 보시는 양반한테 꼭~~대...가 좀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