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선유동계곡

금농 2022. 8. 17. 07:17

kakaotalk_대금연주24335264.mp4
5.15MB

1, 제목: 선유동 계곡

2, 언제: 2,022. 8. 13.(토, 흐리고 무더움)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신흥- 지네능선- 국사암 사거리- 선유동 계곡- 쇠통바위능선 사거리- 

         1,023번지방도- 신흥(약 8.1km)

5, 소요시간: 5시간 54분

6, 시간대 별 구간

   07: 51.- 신흥 삼거리

   09: 48.- 국사암, 고사 사거리

   11: 18.- 선유동 계곡(~ 11: 28.)

   11: 52.- 사리암 지 삼거리

   13: 07.- 쇠통바위 능선 사거리

   13: 15.- 1,023번 지방도

   13: 45.- 출발지

7, 산행소묘

 화개골 산행을 계속 이어갑니다.

 



먼저 신흥, 목통 삼거리에 있는 삼신동 각자를 봅니다.

희미하지만 오른쪽부터 三神洞입니다.

 



지리산을 삼신산이라고도 하는데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라고 붙은 이름인 줄 알았더니......

 

아래는 지리99- 지리박물관에 있는 엉겅퀴 이재구 선생의 삼신동에 관한 글입니다.

 

  

 

 

아시다시피 三神山은 옛중국의 신선사상에서 탄생한 것으로 발해 동쪽에 있다는 신화 속의 산이다. 

봉래․방장․영주(蓬萊山 方丈山 瀛洲山) 그것이 우리 땅에 건너와 금강산(봉래), 지리산(방장), 한라산(영주)이 되었으니 일종의 번안인 셈이다.

쌍계사에는 ‘삼신산쌍계사’라는 명칭답게 옛부터 봉래각․방장각․영주각 등 삼신산을 상징하는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김창흡의 《영남일기》(1708년) 등 여러 곳에 나온다. 

 

물론 지리산이 방장산이므로 격이 높은 건물인 방장전으로 기록된 곳도 있다. 

(*참고로 궁중건물을 기준으로 한 건물의 格은 殿>堂>閤>閣>齋>軒>樓>亭…순이다.)

대원사 현판은 「方丈山大源寺」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거의 ‘지리산화엄사’ ‘지리산천은사’…하는 식이다

단순히 이렇게만 본다면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과 삼신사에서 유래한 삼신동은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첫째, 불교는 神을 숭상하는 종교도 아니고, 신비주의를 표방하는 믿음체계도 아니다. 

그러니 절 이름에 “神”字가 들어간 것은 왠지 불교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그

런데 神字가 들어간 절이름이 유독 이곳 한 골짜기에 3개나 집중되어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그래서 삼신동이 되었다는 것은 더더욱 이상하다.

 

절 이름에 神자를 넣은 것은 이렇게 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고유의 민간신앙을 받아들이고 통합에 능한 옛 한국불교의 유연성에 기인하는 것으로 삼신산의 개념을 포용한 것이라고…. 

즉 三神寺가 자리잡기 이전에 이미 삼신산 사상이 지리산 인근에(좁게는 화개동천 주변에) 퍼져 있었고 

그것을 불교가 적극 수용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지금 「三神洞」 刻字는 최치원이 새겼다고 전해지는데, 삼신사가 있어 삼신동이 되었다면 그 이전부터 삼신사가 존재했어야 되는데,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신흥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내가 과문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인로의 《파한집》(1170년대)으로 안다. 

이인로는 청학동을 찾아 그 근방을 헤맸다는데 의신사 영신사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물론 존재했지만 기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영신사는 더 늦은 1463년 청파 이륙의 『智異山記』에 처음 등장한다. 

최치원이 생존했던 서기 900년 이전에 그 깊고 높은 지리산 골짜기에 영신사가 과연 존재했을까?

 

셋째, 삼신산과 삼신동은 그 개념이 같다고 볼 수 있지만, 삼신산이 있기 때문에 삼신동이 있는 것이지, 

삼신동이 있어 삼신산이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삼신산 중에서도 가장 삼신산다운 곳이 곧 삼신동이라는 얘기다.

지리산은 삼신산 중의 하나이고 삼신산을 대표한다는 생각, 삼신산을 포괄한다는 자부심, 

삼신산으로 불렀기에 자연스레 그 뜻을 취하여 골짜기 이름도 삼신동이 된 것이 상식적인 얘기이지, 

삼신사가 있어 삼신동으로 불린다는 얘기는 후세에 덧붙여진 얘기일 것이다.

 



선유동계곡을 바로 가기가 조금 밋밋해 지네능선을 올라 가기로 합니다.

07: 51. 출발합니다.

 



신흥교 부근은 아직 아침이라 피서객은 없습니다.

저 봉우리를 넘어갈 겁니다.

 






세이정

바로 아래 화개천 변에 세이암이 있어 붙은 정자 이름입니다.

 

⑵ 洗耳嵒(세이암)

 (역시 이재구 선생의 글입니다.)

 

화개동천 근방에는 유달리 최치원의 흔적이 많이 전해지는데, 옛 신흥사지 앞 계곡 가운데 바위에 새겨져 있는「洗耳嵒」도 그중 하나다. 

세이암에 대한 현재 거의 모든 해설은 이렇다. 

“고운 최치원이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을 주유하던 중 국왕이 사신을 보내 국정을 논의하자는 말을 듣고 이곳에서 귀를 씻었다 하여 

洗耳岩이라 하였다. 선생의 친필이다.”

 

洗耳는 옛중국 전설상의 임금인 요(堯)임금이 은자(隱者)로서 덕망이 높은 허유(許由)에게 나라를 물려주려 하자 

허유는 자신의 귀가 더럽혀졌다면서 귀를 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또 그것을 안 소부(巢父)는 귀씻은 더러운 물을 자신의 소에게 먹일 수 없다고 하여 소를 상류로 끌고가 물을 먹였다는 얘기도 세트로 전한다.

 

그런데 자신의 귀를 씻은 장소에 그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본인이 손수 글자를 쓰고 새겼다는 것은 

은둔하고자 하는 사람의 행위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 얘기를 듣고 후세의 누군가가 새겼다면 몰라도...

또 선생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新羅壽昌郡護國城八角燈樓記를 읽어봐도 세상과 인연을 끊은 것 같지는 않으므로 

임금의 명을 전하러 온 사신의 말을 듣고 야박하게 귀를 씻지는 않았을 것 같다.

선생은 儒 佛 仙 3교를 두루 넘나들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유학자였다. 洗耳는 儒者의 대응방식이 아니다. 

儒者는 세상에 나아가지 않아도 세상을 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망해가는 왕조에서 이미 떠난 사람에게 다시 국정을 의논하자고 부른다는 것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물이 흐르는 바위에 새긴 글자가 1100년 세월을 견딜 수 있을까?

 

경주 인근과 주로 남쪽 지방에서 고운과 관련된 많은 사연들이 전해진다. 좀 유명하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문창대, 해운대, 환학대, 학사대 등…. 

심지어 단속사 입구 용두목 아래 “廣濟嵒門”은 글쓴 사람과 새긴 사람, 연대까지도 그옆에 같이 새겨져 있는데 

최치원의 글씨라 우기는 데에는 할말이 없다.

 

비슷한 예로, 대한민국의 웬만한 절이나 작은 암자들도 창건주는 원효 아니면 의상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교통도 열악했던 당시 원효․의상스님은 어떻게 그 많은 절들을 다 세웠을까? 

절 하나를 세우는 것도 평생의 서원(誓願)으로도 이루기 힘든 일인데…. 신통력을 부렸을까?

되도록이면 절의 기원을 끌어올리고 高僧의 권위를 빌리고자 하는 후세인들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현재의 정통성과 권위확보를 위하여 죽은 자를 끌어오거나 과거의 영광에 기대는 것은 사람사는 세상에 흔히 있는 일이다.

 

이름난 사람의 권위에 가탁(假託)하는 일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알게 모르게 많다. 

그래서 글씨체 등을 비교하여 삼신동․세이암․쌍계석문 등의 글자는 최치원의 친필이 아니라고 의심하거나 결론지은 옛사람들도 많다. 

현재 화개동천에서 선생의 친필로 확정된 것은 쌍계사 경내의 「진감선사 비문」 밖에 없다. 

나는 글씨체에는 문외한이라 나머지는 눈 밝은 사람들의 안목을 기다린다.

 



글쓴이가 [道光]입니까?

누구죠?

庚辰花春이면 1,940년은 아닌 것 같고 2,000년에 세운 건가?

 



토끼봉에서 내려오는 범왕능선이 신흥에서 꼬리를 내리기 직전입니다.

 



가운데 도덕봉 뒤로 지리 주능선

 



무슨 버섯이죠?

 



비지정 등산로인데 이렇게 나무계단을 힘들여 놓았습니다.

고맙게도.

 

공단에서 한 일은 아니겠고 인근 동네 주민들이 한 것 같습니다.



서너 개체 보이는데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직 어린 것이네요.

 



등로 양쪽의 키 큰 소나무에 밧줄을 걸어 그네를 만들었는데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지

한쪽으로 묶어 놓았습니다.

 

이 길 초다듬이 경사가 예사가 아닌데 누가 일삼아 올라와 그네를 탔을까?

 



이장을 했는지, 묵었는지 폐 산소 몇 개를 지나고,

 

이 능선길도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아 거미줄이 성가시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스틱으로 걷어내며 진행했는데도

거미란 넘들은 벌레들이 사람 키 높이에 잘 다니는 줄 아는지 얼굴에 거미줄을 통째로 맞기를 대여섯 번 했습니다.

 

임우식 선생이나 꼭대님, 뽓때님 같으면 목이나 가슴에 걸렸을 터인데

키가 작으니 쯧쯧쯧.

 



???

 

604봉 지나고, 699봉 지나 내리막길을 잠시 내려가면,

 



09: 48. 지네능선 사거리입니다.

 

지네능선은 남부능선 하동복바위와 상불재 중간에서 신흥으로 내려오는 능선인데,

능선이 내려오면서 지네 발처럼 곁가지를 많이 친다고 지네능선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간에 쌍계사로 떨어지는 탑봉능선도 주요 지능선입니다.

 



작년 6월에 국사암에서 고사 옛길 걷는다고 이리로 와서 선유동계곡으로 넘어갔습니다.

기록을 보니 국사암에서 사거리까지 2시간 12분 걸렸네요.

 

신흥에서 여기까지 1시간 57분이니 어금버금.

 



꼬불꼬불 능선 사면을 따라 나아갑니다.

 

한 이십 년 전만 해도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아주 호젓한 산길이었는데

주민들도 드나들지 않고 더구나 산꾼들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이제 세월따라 묵어

작년 다르고 올해 다릅니다.

 



무성한 산죽밭을 뚫고 나가느라 체력 소모가 큽니다.

안 그래도 더운 날씨인데 웃자란 조릿대를 헤쳐 나가자니 땀이 비오듯 줄줄 흐릅니다.

 



사거리에서 잠시 진행하다가 길이 왼쪽으로 80도로 꺾은 지점에서 다시 90도로 오른쪽으로 꺾이는 지점까지,

(고사옛길) 글자 앞, 뒤 구간이 특히 더 심합니다.

 

작년에 왔으면 그만이지 만다꼬 또 이 길을 와 이리 생고생이지?

아마 제 남은 여생에 이 길은 다시 안 오지 싶습니다.

체력이 딸려!

 

 

군데 군데 석축으로 길을 만든 흔적도 보이고.....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나가면 잠시 앞이 트입니다.

 



시야도 트이고 숨통도 틔고.

남부능선에서 쇠통바위능선이 내려옵니다.

뒤는 단천지능.

 



저 뒷편으로 주능도 조망됩니다.

구름에 가린 곳은 명선봉 어름입니다.

 

오늘의 조망은 딱 여기 한 곳입니다.

세이정에서 본 것 빼고. ㅎ

 

조망처 지나자마자 잡목이 가로막아 이걸 뚫고 나가느라 군대에서 배운 낮은포복 높은포복으로 기면서

또 진땀을 한차례 쏟습니다.

 



고로쇠물 채취 작업 흔적입니다.

아마 지금은 고로쇠 수액 채취도 옛날만큼 하지 않는 모양이고.

 

전에 꼭대님이 고사 옛길 이런 길 추억을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지금은 많이 무너져 내리고 사람이 밟지 않아 옛날 그 길이 아닙니다.

 



이 양반 표지기와 광주의 [백계남] 표지기가 몇 개 붙었습니다.

 



11: 18. 선유동계곡에 내려섰습니다.

 

사거리에서 1시간 47분 걸렸네요. 겨우 1.5km 거리를.

작년에는 1시간 14분.

날씨가 더운 탓이 크지만 길도 더 묵었고, 체력도 더 떨어졌고......

 

시원한 계곡수에 땀 좀 씻고 물도 마시고 정신도 차려,

11: 28. 이제 내려갑니다.

 





계곡 내려선 지점 조금 아래가 옛 [고사]마을 터입니다.

 

대밭도 있고 묵정밭 흔적도 보입니다.

 



11: 52. 사리암 지 가는 삼거리를 지납니다.

 

사리암 지는 도로에서 그리 멀지 않아 찾는 사람이 그래도 있는지

표지기가 몇 개 붙었습니다.

단천마을에서 더 가깝습니다.

 



지금부터 仙游洞, 신선들이 노닐었던 계곡 풍경입니다.

 

소폭과,

 



와폭,

 



소가 이어집니다.

 



이단폭포와

 



삼단폭포도

 



沼, 潭, 澄, 

소 담 징은 어떻게 구분합니까?

 



?

 



징담은 맑은 연못이고......

 



계곡을 1시간 40분 걸어

13: 07. 쇠통바위능선과 만났습니다.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대성교 앞으로 떨어지지만,

혹시나 싶어 능선을 넘어 갑니다

 



13: 15. 의신 올라가는 1,023번 지방도로 떨어졌습니다.

대성교 조금 위입니다.

 



대성교에서 본 선유동계곡 끝자락.

여기에서 화개천과 만나 섬진강으로 내려갑니다.

 



미나라아재비

 



신흥교 아래에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즐깁니다.

중년의 부부도 물을 끼얹으며 장난을 치네요. ㅎ

 







물에 발 담그고 앉아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캬~~~~

신선이 된 고운 최치원 선생이 따로 없습니다

 



아침에 낑낑대며 올랐던 봉우리가 조금 낮아졌네요.

 



할배가 땀을 많이 흘려 몸무게는 줄었는데 얼굴은 통통하게 나왔습니다.

볼록렌즈라.

 

아! 아침에 출발할 때 찍은 것이네예. ㅋ

 



막바지 무더위가 기승입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고, 좋은 산행 많이 하십시오.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12 Comments
Zza웅이azZ  08.14 14:17  
선유동계곡 어릴쩍에 미끄럼따던곳인데 식수원 보호로 못들어가게 하네요.
그리고 그기서부터가 국립공원..
전 지금 봉산골로 올라 심마니샘에서 쉬고있습니다 ㅎ
신흥교 아래 파라솔 친구집꺼네요 ㅋ 길목슈퍼~

수고하셨습니다 선배님
강호원  08.14 15:50  
웅이님, 지금 심마니샘이면 주무시고 내려오실 건가요?

자난 주 댓글에 선유동계곡 들먹이던디 어릴 적
놀이터였네예.

길묵슈퍼가 친구네 집이군요.
여름 한 철 장사 잘 하데요.
여름 내 주말마다 그 집 앞 지나다녔는데
손님 많습디다.ㅎ

이번에도 쌩나들이점빵 들렸습니다.
누님께 전번 사고 소식 전했더니 비지정 다닌다꼬
걱정하셨습니다.

안전 하산하시고,
고맙습니다.
Zza웅이azZ  08.15 16:27  
선배님
어제 친구와 반야중봉서 자고 아침에 화개재에서 반선으로 내려왔습니다. 세벽부터 바람이 세차고 구름이 잔떡끼어 정규등산로로 하산했습니다. 이전 텐트며 침낭말려서 정리중입니다.
항상 재밌는 산행기 감사합니다
레테  08.14 20:45  
몇주전 선유동계곡에서 고사옛길 입구를 못찾아
포기했었는데요
선생님 산행기를 보니 잘된기었네 싶습니다.ㅎㅎ

무더운날씨에 묵을대로 묵은 옛길 걸으시느라
무척 고생하셨군요.
그넘의 거미줄은 우찌그리 귀찬시럽은지..
아무도 만나지 못할것같은 산길에서
거미줄 걷어가며 왔을 산객이라도 만날때면
그래서 더 반가울때도 있데예.ㅎㅎ

다녀온지 얼마되지않아 선유동계곡풍경이 낯익습니다.

수고하셨고예.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강호원  08.15 06:45  
선유동에서 고사옛길 못 찾은  건 결과적으로 잘된 일이 맞습니다. ㅎ
아무 볼 것도 없고 산죽과 잡목과의 씨름만 해야되니.

그날도 6시간 묵언정진 산행이었습니다.
전 번 오토바이능선에서 우연히 여수의 반야봉님 만난 것 외는
요즈음 사길에서는사람 귀경 힘듭니다.
대성동이나 신흥에서는피서객이 많지만.

고맙습니다.
일원  08.14 20:54  
매주 화개골 좋은 계곡을 소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내대계곡 보담 우리 향리 하동을 자주 찾아볼 요량입니다. 옛날엔 세이정 자주 갔었는디, 감사합니다~~~늘 안산과 즐산입니다~~~
강호원  08.15 06:49  
내대계곡, 거림계곡도 좋지만
同價紅裳이라고 고향 땅 하동의 지리산 계곡도 좋은 곳 많습니다.
화개골 주변에 지계곡이 많습니다.

고맙습니다.
황하주  08.16 17:41  
오래전 선유도 계곡 주위 산행이 인기를 끌었던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이곳으로 산행 하시는 분들이 많지는 않은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오래전에 한번 가보고 그 뒤로는 못 가 봤구요
고사옛길도 한번은 걸어봐야 하는데...
선배님 덕분에 지리산 남부쪽은 속속들이 잘 보고 있습니다
볼록렌즈 사진이지만 그래도 건강해 보이시고,젊어 보이십니다 ^^
강호원  08.16 18:07  
말씀대로 지리산도 유행을 탑니다.
요즘엔 대륙폭포골, 칠선계곡, 반야봉 자락, 등을 많이 갑디다.

저야 짧은 거리 단 시간 산행으로 체력에 맞게
줄인 지가 오래되었지요.ㅎ

부상 당한 발은 많이 나아지셨나요?

고맙습니다.
옥국장  08.16 18:55  
앞길을 열어 주시니 마당히 따라 갈 일입니다.
감사히 보고 배웁니다.
무더운 계절에 억수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꾸우뻑^&^
강호원  08.16 19:30  
아니, 옥국장님!

Ek가 무신 뜻입니까?
늙은이는 요즘 젊은이들 쓰는 약어나 은어,
심지어 속어도 욕인지 뭔지 잘 몰라 그럽니다. ㅋ

무더운 날씨에 땀은 마이 흘렸지만
평소 땡볕에서 테니스 매일 치는 체력이이라
견딜 만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옥국장  08.16 21:22  
단순 오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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