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불일폭포

금농 2022. 9. 27. 16:50

1,제목: 불일폭포

2, 언제: 2,022. 9. 24.(토,쾌청)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주차장- 쌍계사- 비로봉능선- 불일폭포- 불일평전- 쌍계사- 주차장(약 6km)

5, 소요시간: 5시간

6, 시간대 별 구간

   08: 03.- 쌍계사 2주차장

   08: 17.- 쌍계사

   09: 08.- 도성암(~ 09: 14.)

   09: 50.- 비로봉(~ 09: 58.)

   10: 17.- 불일폭포(~ 10: 22.)

   10: 32.- 완폭대(~ 10: 40.)

   10: 42.- 불일암(~ 11: 05.)

   11: 14.- 불일평전

   11: 48.- 환학대

   12: 18.- 쌍계사(~ 12: 47.)

   13: 04.- 주차장

7, 산행소묘

 모처럼 지리산에 듭니다.

한더위에도 매 주 빠지지 않고 산행을 했는데 어쩌다보니 한 달 반이나 연속 결석을 했습니다.

손 다쳐 한 달간 입원 했을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네요.

 



08: 03. 초추의 부드러운 아침 햇살이 산자락에 스며드는 석문마을 주차장에서 출발합니다.

 



화개가 고향인 박종웅님의 모교 안내판입니다.

 



쌍계사 주변은 그야말로 거미줄 같이 등로가 촘촘히 이어져 있습니다.

 



소유와 집착의 미망에서 깨어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입니다.

空手來, 空手去, 빈 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입니다.

 

백년도 안 되는 인생이니 시간을 아껴 쓰고.

그러고 보니 제 인생도 어영부영 팔 할을 쓰고 이제 겨우 이 할도 채 남지 않았습니다.

 



08: 17. 절 경내에 백 날을 피는 배롱나무꽃이 아직 남았습니다.

 



공양간 뒤로 돌아 나갑니다.

뒤에 보이는 저 가마솥을 요즈음도 쓰는가?

 



장독대 옆을 지나면,

 



내원골 따라 길이 이어지는데,

문을 굳게 잠그고 막았습니다.

 

당초 소은암, 활인령을 거쳐 불일폭포 위쪽에서 불일폭포로 돌아 내리려 했는데,

 



막은 문 왼쪽 위 산자락으로 바로 붙어 진행합니다.

몇 년 전 향로봉능선으로 내려와 법고연습장에서 차밭, 대밭을 뚫고 나온 적도 있고.

 

조금 진행하니 묵정 차밭, 시누대밭, 울타리 등이 이리 저리 막혀 도저히 뚫고 나가지 못합니다.

할 수 없이 궤도 수정을 합니다.

비로봉능선으로 붙어 진행합니다.

 



08: 55. 목교(지금은 불일교 이름표가 붙음)에서 도성암 가는 삼거리로 나왔습니다.

도성암 입구 정낭에는 스님 수행 중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금한다는 안내 쪽지가 붙었습니다.

 



남부능선, 내원치 부근이 보이고.....

 



내원골 건너 내원능선이 내려옵니다.





커다란 맷돌도 앉았고,

 



解憂所

 



09: 08. 절집 마당에 늙수그레한 나무도 반기고,

 


편액도 안 붙은 도성암엔 인기척이 없습니다.

전기가 들어와 축담에 냉장고가 놓였네요.

 



내원능선 저 너머에 신촌미을이 있겠네요.

 



사용하지 않아 이끼 낀 절구통도 있고.

 

09: 14. 물 한잔 마시고 되돌아 나갑니다.

 



비로봉능선 길은 일급 등로입니다.

 



09: 50. 비로봉능선의 끝자락, 봉우리에 도착했습니다.

 



조금 아래 조망처로 내려갑니다.

 

가운데 향로봉(백학봉)능선이 내려오고,

폭포는 협곡의 수림에 묻혔습니다.

오른쪽 멀리 남부능선이 가로지릅니다.

 

되돌아 올라와 정규등로로 내려갑니다.

 



10: 17. 이 안내판은 불일암, 불일폭포 이름이 지눌 보조국사의 시호 불일보조에서 유래했답니다.

 



불일폭포

 



18세기 초의 그림은 조금 과장되었죠?

불일암도 폭포 상단에 있고.

 

그리고 그림 맨 오른쪽 상단의 제호도 河東 佛一庵瀑布라 적었네요.

그림은 겸재의 손자 정황이 그렸다고 합니다.

 



가운데 불일폭포가 쏟아지고, 

하단 왼쪽 너른 바위가 완폭대입니다.

상단 왼쪽은 불일암과 그 왼쪽은 불일평전

 





10: 32. 완폭대에서 바라본 비로봉(청학봉)

 



2,018년 엉겅퀴 이재구 선생께서 발견한 翫瀑臺(완폭대) 각자인데,

제 눈으로는 판독이 어렵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엉겅퀴님의 역저 지리99 ,지리박물관- 문화유적명소의 [완폭대를 찾아서] 참조)

 

 그 전에 최초 발견은 공단 직원이랍니다.

 도솔산인님도 답사했다고 합니다.

 



10: 42. 불일암으로 들어섭니다.

 



절집 옆으로 돌아 물 한 잔 마시려는데 인기척을 들은 스님이 나옵니다.

스님은 달변이 아니라 어눌한 말씀으로 설명이 길어집니다.

 

주련의 글씨대로 비폭 정상 불일암, 나대 진감 刱(창, 엉겅퀴님께서 비로소 創과 같은 뜻이라네요) 시거,

신라 때 진감선선사가 처음 여기에 거처했다는 뜻인 것 같은데....

스님께서는 佛日은 신라 왕께서 내려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불일암 현판

 

편액은 요 아래 쌍계사 안내판에 있는 쌍계사의 현재를 있게 한 중창불사의 주역,

杲山(고산)  방장 스님의 글씨라고 엉겅퀴 이재구 선생이 알려줬습니다.

 



스님과 의도치 않은 대화를 많이 나누고 인사를 하고 절집을 내려가는데 뒤에서 부릅니다.

거사님!인가, 선생님!인가....

무슨 일인가 뒤돌아 보니 담장 너머에서 스님이 올라오라고 하네요.

 



바나나를 가지고 가랍니다.

너무 많다고 하니 그럼 절반씩 나누자고 하네요. ㅎ

 



빵도 함께.

 

헉! 이럴수가, 보통 객이 스님께 무엇을 드려야 하는 긴데, 쩝!

아마 스님께서 늙은 나그네가 후줄그레하니 춥고 배고파 보였나봅니다.

스님의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 사양하지 않고 받아서 배낭에 넣고,

 

11: 05. 다시 내려섭니다.

 

 

지리산 일대에 청학동이라는 이름이 많습니다.

      불일평전도 그 중 하나입니다.


   



   11: 14. 봉명산방 자리에 새로 불일산방이라 이름 짓고 공사를 하는 중입니다.

 



고마리

 



물봉선

 



제가 예전에 이 길 다닐 적에 변규화 옹이 계셨는데.......

 



무신 버섯?

 

마족대, 환학대를 거쳐 내려갑니다.

12: 18. 쌍계사로 내려왔습니다.

 



팔상전

 



영산회상도

 





쌍계사 꽃무릇은 아직 더 버티고 있네요.

우리집은 구월 초에 피어 한 보름 피었다가 다 졌는데.

 

요놈은 가만히 두어도 저절로 번집디다.

 

 

 

쌍계사에 셀 수 없이 와도 금당 문은 굳게 닫혔더니 언제부터 열렸죠?

진작 그리할 것이지.

 

금당은 절의 본당으로 본존불 모신 건물을 말하는데

쌍계사는 대웅전이 따로 있습니다.

아마 혜능의 정상탑을 모셨다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혜능(慧能: 638~713)은 당나라(618~907) 시대의 선승이며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이다.[1] 일반적으로 6조대사 또는 조계대사(曹溪大師)라고 한다. 대감선사(大鑑禪師)라고 시호되었다.[1]

전기[편집]

신주(新州: 광둥성)에서 태어나 세살 때 부친을 잃고 가난하게 자랐다.[1] 어느 날 나무를 짊어지고 팔러 다녔는데 《금강경(金剛經)》 외는 소리를 듣고 출가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한다.[1] 24세 때에 기주 황매산(黃梅山: 후베이성)의 동선원(東禪院)에 주처하고 있던 선종의 제5조 홍인(弘忍: 601~674)을 찾아가 가르침을 받고, 나중에는 홍인으로부터 선법(禪法)을 물려받아 선종의 제6조가 되었다.[1]

활동[편집]

혜능은 소주(韶州) 조계(曹溪)의 보림사(寶林寺) · 대범사(大梵寺)에 머물면서 신도들의 귀의를 크게 얻었다.[1] 대범사에서 혜능이 설한 설법을 중심으로 편찬된 문헌이 《육조법보단경(六祖法寶壇經)》 또는 《육조단경(六祖壇經)》이란 이름의 선종의 경전으로 후세에 전해졌다.[1]

혜능으로부터 사법(嗣法)을 이어받은 문하의 제자가 43인을 헤아렸고 중국의 선종은 이 때부터 융성하게 되었다.[1] 그의 계통의 선을 남종(南宗) 또는 남종선(南宗禪)이라 하여 신수(神秀: ?~706) 계통의 북종(北宗) 또는 북종선(北宗禪)과 대립하였다가, 당나라 말기 이후에는 남종만이 번영하였다.[1] 남종은 돈오(頓悟)를, 북종은 점오(漸悟)를 주장하였다.[1] 후대에 이 양자의 선풍의 차이를 남돈북점(南頓北漸)이라 하였다.[1]

혜능의 문하 제자 중에는 청원행사(靑原行思: ?~740[2]· 남악회양(南岳懷讓: 677~744[3]· 하택신회(荷澤神會: 685~760[4]· 석두희천(石頭希遷: 700~790[5]· 영가현각(永嘉玄覺: 647~713[6]) 등이 가장 유명하다.[1]

위키백과

1. 개론

[편집]

중국 선종(禪宗) 불교의 육조(六祖)이다. 혜능의 이야기와 그의 설법을 엮어 책으로 낸 것이 육조단경(六祖壇經)이다.

영남의 신주 출신(현재의 중국 광동성)으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어 어머니를 봉양하다가 금강경의 응무소주 이생기심 應無所住 以生起心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를 듣고 불교에 귀의하기로 결심했다.

불교에 귀의하기 위해 오조 홍인(五祖 弘忍)이 머무르던 풍무산에 찾아가 절의 행자로서 8개월간 나무꾼 일을 하고 불경을 들으며 생활했다. 
홍인은 자신을 받아주길 청하는 혜능에게 "남만인(남쪽 오량캐)이 어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라고 물었고[1]
이에 혜능은 "불성에 남북의 구분이 있습니까?"라고 대답해서 행자로 머물 수 있었다.

하루는 홍인은 의발[2]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에게 게송을 지어오게 했는데 제자 중 가장 깨달음이 깊었던 신수(神秀)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벽에 붙였다.
몸은 보리수[3]
마음은 명경대라[4]
부지런히 털어내어[5]
먼지[6] 일지 않게 하리라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動拂拭
勿使惹塵埃

홍인은 자신의 제자들에게는 신수의 게송대로 수행할 것을 명하면서도, 정작 신수에게는 따로 "문턱에는 이르렀으되 이를 넘지는 못했다."라고 평했다.[7]

이를 본 혜능은 다음과 같은 게송을 지어 그 아래에 붙였다.[8]
보리는 본디 나무가 아니요[9]
명경 또한 대(臺)가 아니다[10]
본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어디서 티끌이 일어나리오[11]

菩提本無樹
明鏡亦非台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이를 본 오조 홍인은 다른 제자들이 혜능을 해할까 염려하여 "이 게송에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이를 지운 뒤[12]
밤에 그를 불러 의발을 전하니 혜능은 그날 밤으로 절을 떠났다. 다음 날 의발이 혜능에게 넘어갔음을 알게 된 제자들은 격노하여 혜능을 추적했으나 잡을 수 없었다. 
이 중 군인 출신의 '혜명'이라는 법명을 가진 한 제자가 거의 혜능을 잡을 뻔했고 혜능은 "의발이 탐난다면 가져가시오"라면서 의발을 두고 도주하였다. 
혜명이 의발을 집어들려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고, 이에 혜명은 혜능에게 가르침을 청한다. 
돌아온 혜능은 설법을 해 주었고, 혜명은 감명을 받아 물러났다. 혜명은 훗날 혜능의 제자가 되었고, 
스승의 법명을 피휘하여(이름에 같은 '혜'자가 겹치는 것을 피하여) '도명'이라 고쳤다.

도주한 혜능은 세속 사람의 모습으로 은둔하다가 광주의 법성사(法性寺)에 들어갔다. 
어느 날 인종 법사가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는데,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을 보고 한 승려는 '저것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다른 승려는 '저것은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혜능은 '움직이는 것은 깃발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놀란 인종 법사는 정체를 물어보았고, 혜능은 자신의 정체를 말하고 의발을 보여주었다. 
이에 인종 법사와 다른 승려들은 혜능에게 예를 표하고, 혜능에게 정식으로 비구계를 내리고 삭발하였다. 이 것으로 혜능은 공식적인 육조가 되었다.

그리하여 선종은 이후 신수를 중심으로 한 북종선과 혜능 문하의 종단인 남종선으로 갈리었다.
위키백과
 



금당 안에 있는 저 탑에 육조대사 혜능의 頂相(머리)가 안치되었다는데 열어보지는 않았습니다. ㅎㅎㅎ

당나라 때 스님 머리가 우찌 신라에 왔을까????

 

 

이 스님께서 사진 찍는다고 얼쩡거리는 저에게 툇마루에 같이 앉으라 하고

육조대사에 관한 해설을 한 십여 분 합니다.

 

소림사로, 신라로, 우리나라 선종의 흐름을 이야기합니다.

혜능대사의 별호인 조계대사의 이름을 따라 우리나라 조계종이 창립되었다는.

 



국보인 진감선사탑비와 대웅전

 



신라 때 창건된 절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1,975년부터 고산스님이 복원 중수 중창을 해 현재의 대가람의 사격을 갖추었답니다.

 



삼신산 쌍계사 일주문

잘 아시는대로 지리산은 본 이름 외에 방장산, 두류산, 삼신산으로도 불립니다.

 



화개천 건너 용강마을 뒤로 새껴미재와 오른쪽 황장산.

가운데 펑퍼짐한 지능선 오른쪽 차밭으로 오르면 만항마을(늦은멕이)이 나오고 

마을 뒤로 감돌아 올라 새껴미재로 오릅니다.

 

차밭 중간쯤 하얀 집이 쌍계사 입구 정류소 옆 
쌩나들이점빵 주인장 댁인 것 같습니다.

(지리99 화원이신 박종웅 누님.)

 

13: 04. 주차장 도착으로 오늘의 짧은 산행을 마감합니다.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한 달 반이나 산행기를 못 올리니 저도 사람이라꼬 늙은이 혹시 아프냐고 궁금해

전화로, 문자로 안부 물으신 여러분께 죄송하고 고맙습니다.

 

아직까지 술배 안 곯고 매일 운동 하고 이렇게 산행도 개시하였습니다. ㅎㅎㅎ

 

좋은 계절에 아름다운 산행 많이 하십시오.

 
 15 Comments
레테  09.25 09:07  
오랜만에 선생님 산행기 접하게되니
반갑기 그지없습니다.ㅎㅎ
같은 화개골 깃점으로 산행을 해서 더 반갑기도 하고예.
단천마을에서 시작했거든예.

당초 계획대로 내원골로는 붙지못했지만
호젓한 산길따라 적당히 잘 다녀오셨네요.

절집구경 잘 했고예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건강하셔서 꾸준히 지리에 드실수있으시길 기원합니다.
강호원  09.25 17:36  
우짜다봉께 오랜만에 산에 들게 되었습니다. ㅎㅎ

다음애 내원골 갈 때는 공양간 뒤의 다리를 건너 진행해야겠습니다.
운제 또 갈 지는 모리지만.

축원의 말씀, 고맙습니다.
황하주  09.25 13:59  
쌍계사가 오래된 고찰이라 그런지
주변으로 산길이 많은것 같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쌍계사 주변이나
지리산 남쪽 풍경 잘 보고 있습니다
상사화도  이쁘고 암자 풍경도
고즈넉하니 너무 좋은것 같습니다멋지고 알찬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강호원  09.25 17:40  
그렇습니다.
오래된 절이라 주변에 암자도 많고 자연히 산길이 발달하였습니다.

전에도 언급하였지만 저는 지리산 북쪽 자락보다 남쪽을 더 자주 가게 되는군요. ㅎ
수도권보다 접근성이 좋아 그럴 것입니ㅏㄷ.

꽃무릇(석산이라고도 함)은 상사화 같은 수선화과이지만
꽃은 다릅니다.
상사화는 연분홍색이고 꽃도 크지요.

고맙습니다.
일원  09.25 17:39  
ㅎㅎ 오랜만에 납시었습니다. 건강하시지요? 괜한 杞憂였습니다. 덕분에 컴앞에 앉아서 쌍계사 경내 구경도 하고, 좋은 노래도(Unchained Melody) 감상하였습니다. 좋은 계절에 산행도 많이 하실터인디, 항상 안전산행 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강호원  09.25 18:41  
일원, 원일 선생!
제 산행기 팬이신데 한 달 반 동안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여러 일이 겹치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사람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한 번 빠지고. 두 번 빠지니
게을러져서 작심하고 갈 수 있는 기회도 미루게 됩디다. ㅋ

운동, 음악을 좋아하시는 일원  선생이라
제가 올리는 하찮은 음악까지 언급해주시니
고맙습니다.
흐르는 곡은 사랑과 영혼의 삽입곡으로 더 유명해졌지요.

항상 격려의 말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Zza웅이azZ  09.25 23:06  
선배님 산행기 반갑네요
오랜만입니다. 제산행기 선배님댓글에 제가 2주연속 쉬셨냐 물었는데 한달이 넘게 쉬셨군요.
전 오늘 백무동 작은샛골로 선배샘이노 올라 바른재에서 오공능선으로 내려왔습니다.
바른재에서 바라보는 앞당재 뒷당재 이야기도 알게되었구요~
국민학교때 해마다 한번은 소풍으로 불일평전에서 보냈던것같네요
예전에는 폭포아래까지 내려갈수있었는데~~
누님집은 사진 하얀집에서 오를쪽 반대쪽으로 보입니다 ㅎ
더많은 화개골 산행기 부탁드립니다.
저희집 송이도 올해 흉작인지 모르겠네요
이번주말 어머니께 함물어봐야겠네요 지난주 몇개는 먹었는데~~ 내년을 기약해야될지도 모르겠네요
강호원  09.26 11:46  
전에 만항으로 오르는 길가 마지막 집으로 들은 것 같은데
제가 생각했던 집이 아니군요.ㅎ

여름 내내 화개골 인근 산자락을 훑었는데
이제 다음 골짜기로 넘어가야 되나 망설이고
있습니다.

빗점 위 절골, 산태골, 왼골 등도 있는데
이제 체력이 달리고.

웅이님 고향 골이라 더 자주 찾은 것이기도
하고요.
송이가 흉작이라니 안타깝습니다.

고맙습니다.
Zza웅이azZ  09.26 12:25  
ㅎ 한번 뵌적도 없는데 일부러 제고향 많이 찾아주시고 감사합니다.
지리n보이  09.26 07:09  
쌍계사 금당의 열린 모습은 처음으로 보는 듯 합니다.
불일폭포는 겸재 정선이 살던 시대랑 수량이 많이 줄었나 봅니다.
저도 과거에는 웅장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는데 몇년전에 갔었을 때는 물길이 너무 약하다
싶었거든요
선배님 덕분에 쌍계사 주변 구경 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강호원  09.26 11:51  
조선시대보다 강수량이 줄은 것은 아니라고 보고요,
오히려 기상 이변으로 인한 집중호우 등으로 지리산 자락은
강수량이 늘었습니다.

 지금이 갈수기라 볼품이 없어도 수량이 풍부할 땐
여전히 장관입니다.ㅎ

저도 금당 출입문 열어놓은 것은 처음 봅니다.

고맙습니다.
달님안녕  09.26 09:27  
저 밑 어느분 산행기에 요즘 형님 글이 안올라온다고...혹시 무슨일인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아무도 답이 없더군요..
매주 올라오던 산행기가 안보이니까 무슨일 있으신지 걱정이 되었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시 형님 글을 보니까... 다시 일상이 안정 된다는 마음이 듭니다.
섬세한 산행기 잘보았고요 항상 건강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강호원  09.26 11:56  
산에 안 가니 산행기를 못 썼고,
산행기를 안 쓰니 자연히 지리99 들여다보는 것도
소홀해졌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염려지덕에 무탈하게 잘 있습니다.
꾸준히 산행기 올리던 사람이 뜸하면 안되겠군요.ㅋ

고맙습니다.
옥국장  09.26 13:49  
짧지만 깊이가 있는 후기 잘 보았습니다.
절에서 암자를 경유해서 비로봉을 올라 불일폭포에 가는 길이 있군요.
절 주변에 트랙들이 많아 스님들이 댕기시는 길들인가 했는데 이렇게 후기로 올려 주시니 감사히 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호원  09.26 14:22  
오래전 탐구팀에서 쌍계사 주변 암자터 찾는다고
돌아댕길 때,
지도상 목교에서 도성암 들리고 비로봉능선으로
오른 적이 있어 내원골 진입이 어려워 코스 변경을 했습니다.

 위에 언급하였지만 쌍계사, 국사암 주변에 산길이 이리 저리
많이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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