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화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우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지네.
우리 학창 시절에 애송했던 소월의 시입니다.
지리99의 창립 멤버로 20여 년 우리와 함께 했던 산유화 이영숙님이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會者定離(회자정리)요, 生者必滅(생자필멸)이라
만나면 헤어짐이 있고, 산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옛말이 있지만
이 어인 변고입니까?
2,007년 8월 달궁에서 제4회 산정무한 행사를 할 때입니다.
접수처에 봄이님이 보입니다.
서울팀의 조장이신 산유화님이 회원 소개를 합니다.
17년 전이니 다들 풋풋할 때입니다.
유화님도 참 예쁩니다.
철화님은 오데 가삐고 오키님과 따님만....
그동안 면면들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청탁불문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 숱은 엄꼬.
광주팀이네요.
나마스테, 늘산, 답지, 산구화, 순천의 거 머시냐? 이름이 생각이 안 납니다.
앗!
제가 산행기상 받으러 나갑니다.
뒤에 날진, 뽓때, 청산.
제 속지인 마창진팀, 그때는 중부경남팀이 아니고.
팽팽했던 시절의 제 오른쪽 옆에 최정석, 뒤에 제 둘째 아들, 제 아내 어린양, 한사람 건너 마야고와 동갑인 골드리지,
그때만 해도 머리 숱이 없어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한 뽓때.
아내가 쓰고 있는 저 모자는 아직 제가 씁니다. ㅎ
새댁 같은 유키도 있네요.
산유화 이영숙님은 6.25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8년 김해군 생림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른바 전후 베이비붐세대의 시초에 이 세상에 오셨지요.
낙동강을 사이로 밀양 삼랑진읍과 마주 보고 있는 곳입니다.
해서 삼랑진이 고향인 가객님과 지리산을 매개로 유별난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지지고 볶고...... 애증의 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연하, 다래, 소원님이 무술생, 58개띠 동갑입니다.
탐구팀의 개령암 지 탐구산행 때입니다.
봄이, 가객, 진주의 유랑자, 꼭대, 가객님 뒤에 가려진 산유화
예리한 눈초리로 암각 불상을 살피고 있습니다.
16년 전이니 만 50세 한창 때의 산유화 모습입니다.
만복대 바람의 언덕에서
지금은 건강이 안 좋아 두문불출이지만 저때만 해도 꼭대님도 탐구산행, 산길 탐구에 열정을 쏟으실 때입니다.
세월이 야속합니다.
만복대동릉 뒤로 심마니능선이 내려가고, 뒤에 빗기재, 멀리 상봉은 희미합니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마산으로 청운의 큰 뜻을 품고 유학을 왔습니다.
저와는 나이 차이가 조금 나서 같은 시기에 다니지는 못했지만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이웃의 "ㅅ" 여고에 다녔습니다.
지금 투병 중인 [다우]님이 제 후배이고 유화보다 한 살 위이니 2년은 이웃 학교에 다녔네요.
제 다닐 때에도 조금 떨어진 "ㅁ" 여고보다 가까운 "ㅅ" 여고생에게 모두 관심을 많이 가졌었습니다. ㅎ
봄이와 유화
둘다 지리산을 날아댕기는 건각입니다.
지리99의 중추 멤베이자 서울팀입니다.
이때만 해도 무서운 병마가 덮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이 사진도 영신대 탐구산행이었는데 우째 산유화님은 안 보이네요.
미수타, 수선화, 정주, 사진작가 반야님이 보입니다.
저는 지금은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비실거리지만
저때만 해도 저도 박짐 메고 산에서 잘 때입니다.
엄청시리 추운 1월의 천왕봉 산행 때입니다.
너무 세게 보듬으모 애 선다야~~~~~
산유화님은 2,000년대 초에 백두대간 종주(남한 구간)를 마쳤고,
태극종주, 화대종주 등 지리산 골골 능선을 뒷동네 마실 가듯이 섭렸했습니다.
가객님의 지리99의 역저 유두류록 탐구를 비롯해 산길탐구산행도 빠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산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진정한 지리산꾼이었습니다.
대구의 다래 소원님과,
탐구팀 산행대장 출신인 센드빅과 뽓대, 봄이
로타리대피소에서.
가객님 옆은 누구죠?( 2,011년)
제가 살고 있는 함안에 유화가 친구가 있다고 해서 여러 해 전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법수면에서 낙농(젖소 키우는)하는 집이었습니다.
유화 이야기 하고 싱싱한 우유를 한 통 받아 왔습니다.
동갑친구 영숙아,
조금 있다가 다시 만나자~~~~ 소원.다래, 영숙.
예부터 동갑은 죽어서도 저승의 한 당에 간다고 합니다.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꼬 앞서거니 뒷서거니 우리 모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저 세상으로 기약 없는 여행길을 떠납니다.
서울팀의 유화, 해영, 꼭대
우천 초막터 위 기도터에서
앉은 사람은 제 아내와 오른쪽 다래.
선 분은 유화, 뽓때, 해영, 카메라 든 분은 모르겠고, 뒤에 경란, 수선화, 소원, 센드빅
해영이는 저때는 억수로 야위었네. 배가 홀쭉해요. ㅋ
가객님과 꼭대님
지리99의 산 역사입니다.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에 천착하셔서 한 시대를 이끄신 분들이지만,
이제는 저와 함께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들입니다.
산유화님은 성격이 까칠하기로 가객님과 어금버금하였지만
두 분 다 인정이 많아서 주변의 사람들이 많이 따랐습니다.
그리고 마당발이고 성격이 화끈해 한 살 아래는 무조건 말 놓고,
위는 역시 언니, 아니면 행님으로 갱상도 말로 학시리 했습니다.
저 보고 항상 행님으로 부르기에, 유화야, 니는 여자잉게 나보고
순천의 고니처럼 예쁘게
오라버니, 라고 불러라! 하면 먼 그리 쑥쓰럽거로, 했습니다.
유화야 뭐 묵냐?
제가 지리99를 알고 고 취운님을 통해 산꾼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지리산 산길따라] 멤버와도 산행을 여러 번 했습니다.
지리99 이전에 그쪽에서도 산유화님은 중심이었습니다.
제 아내와도 같이 산행을 많이 해 아내 음식이 같은 갱상도라 유화 입맛에 맞다고 해
김치를 비롯해 밑반찬도 많이 나누어 주었습니다.
탐구팀 멤버- 왼쪽부터 다래, 소원, 산구화, 산용호, 어린양, 두 사람 건너 경란
엄청시리 행복합니다, 지리산에 가면!
제 아내도 탐구팀을 비롯해 전남동부팀 등과 산행을 같이 많이 했었는데
묵고 살기 바빠서 같이 산행한 지가 까마득합니다.
아! 드디어 58청춘님이 중심으로.
58 개띠는 아니고 닉네임을 그리 지었다고 하는데
한국노동연구원에 근무하는 박사님이셨는데
사는 곳이 대구시라 소원, 다래와 탐구팀 산행에 여러번 왔었습니다.
유화야~~~ 어디 보고 계시냐~~~
지리99 대표 미남인 임들롱님을 옆에 두고.
이렇게 지리99와 함께 한 시절을 풍미했던 산유화 이영숙님과 함께 한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습니다.
짧다면 짧았고 , 또 길다면 긴 세월이었습니다.
산유화 이영숙님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의 행복이었고,
같이 한 탐구산행이 보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우, 유화님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
고통 없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천상의 복을 누리시옵소서.
사랑하는 유화야~~~~
산유화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 남인수 노래
[1절]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들에 들에 꽃이 피네
봄이 오면 새가 울면 님이 잠든 무덤가에
너는 다시 피련마는 님은 어이 못 오시는고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2절]
산에 산에 꽃이 지네 들에 들에 꽃이 지네
꽃은 지면 피련마는 내 마음은 언제 피나
가는 봄이 무심하랴 지는 꽃이 무심하더냐
산유화야 산유화야 너를 잡고 내가 운다
도솔암에서 중부경남팀과 서울팀(이하 사진 수야님)
잘~정리해 놓으셨네요...
5월 중순 산정무한 행사로 통화한것이 마지막이
되었네요...
언니~
고통없는곳에서 편히 쉬세요...
너무 슬픕니다.
지리산의 꽃, 영원하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