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남도기행- 1, 선암사

금농 2024. 7. 30. 06:53

1, 날짜: 2,024. 7. 26~7.

2, 누구와: 아내와

 

아내가 아주 짤막한 이틀의 휴가를 내었습니다.

가까운 남도 여행을 합니다.

 

오래 전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를 보고 남도 여행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영암, 강진, 장흥, 보성 등등

근년에는 뜸했습니다.

 

남해고속국도를 달려 목포를 지나 압해대교를 건너 면소재지를 통과하여 조금 더 들어가니

천사대교가 나옵니다.

 





천사대교

 

천사대교(千四大橋)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국도 제2호선의 교량으로, 압해읍의 압해도와 암태면의 암태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이다. 

국내 최초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교량[1]으로 총연장은 10.8km이며, 2019년 4월 4일 개통과 동시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었다.[2]

천사대교는 신안군 비금도도초도하의도신의도장산도안좌도팔금도암태도자은도 9개면 섬들이 다이아몬드(◇)모양으로 펼쳐진 

일명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육상 교통망을 완성한다.[3]

개요

[편집]

2001년 7월부터 압해도 송공항과 팔금도 고산리 6.7km 해상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설계 실시를 추진하기 시작했으며[4]

2005년 11월에는 대략적인 조감도가 발표되어[5] 기획예산처에서 2005년 하반기 예비 타당성 조사사업으로 선정했다.[6]

2007년 정부 예산에 새천년대교 설계비 10억원이 반영되어[7] 2008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2011년 착공 목표로 기본계획 용역이 진행되었으며[8]

2008년 9월 10일 정부에서 발표한 '5+2 광역경제권 발전계획' 30개 선도프로젝트에 새천년대교 건설 사업이 포함되어 건설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9]

추진 중 기존 설계 교량이 3000t급 선박만 통항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대형 선박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 목포해양대학교 교직원들을 통해 제기되었으며[10]

이에 대해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관계 부서와 협의하여 5000t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가 변경되었다.[11] 

또한 초창기 계획 당시 2차로로 추진되었던 교량 폭도 향후 늘어날 교통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가변차로를 포함한 3차로로 확장하여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12]

2009년 3월 16일 조달청에서 총 사업비 5500억원으로 일괄입찰(턴키) 공고가 게시되었으며[13] 

2010년 9월 15일에 착공해 2019년 4월 4일에 개통과 동시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었다.



 

 

 

천사대교
 

 



다리를 건너 조금 진행하다가 되돌아 나옵니다.

암태도, 자은도 등에 볼거리 있다던데 포기하고.

다음은 순천으로 이동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암사로 들어갑니다.

 




 

1,970년대 중반에 처음 와 본 선암사,

그때만 해도 퇴락한 절로 지금처럼 중수가 다 안 된 상태의 고색창연한 모습이 아름다웠었는데....

 



장마기간이라 수량이 풍부합니다.

 





승선교

선암사 절보다 더 알려진 아름다운 홍예교(무지개다리)입니다.

 



보물로 지정할 만합니다.

 

단풍철이면 더 아름답습니다.

300년의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남무아미타불~~~~~

 



강선루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나 봅니다.

 

놀다가 위 승선교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 갔고......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아래 선암사에 관한 글은 [나무위키]에서 따온 것입니다.)

 

한자 : 仙巖寺 / 로마자 : Seonamsa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현재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수행 총림이다. 
진입로는 경사도 완만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름다운 운치있어서 사찰보다 진입로를 더 좋아하는 방문객들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산 속의 절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선암사의 진입로는 다른 절에 비하면 적당한 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범종루(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뒷쪽 편액인데

古 淸凉山 海川寺(고 청량산 해천사) 라고 썼습니다

 

백제 성왕 5년(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初刱主)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사찰을 창건하였고, 
산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사찰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신라 말 이창주(二刱主)[4]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선암사로 지었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이들 중 1철불 2보탑 3부도가 전한다.


 

육조고사

 

고려 중기 삼창주(三刱主)인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대각국사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重創建圖記)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소 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 1171-1197)는 시(詩)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또한 조선 중기 왜란 시기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종 1년(1660년)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세 승려가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크게 중창했지만 전쟁 이전의 사세를 복구하기에는 무리였다.

 
지금 선암사는 배롱나무꽃과 상사화 딱 제 철을 맞았습니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한 이는 호암약휴(護巖若休) 스님이었다. 호암은 승선교를 비롯하여 원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 이후 법당 8채, 전사(殿舍) 12차, 중료(中寮) 16채, 산암 13채를 갖추고 선적암(善積菴), 도선암(道詵菴) 등을 부속암자로 두었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년) 봄에 선암사는 또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었다. 상월새봉(霜月璽封) 스님과 서악(西岳) 스님이 이듬해(1760년) 재건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초창주 아도화상 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

상월새봉 스님은 중창불사뿐만 아니라 1734~35년에 두 차례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한다. 
그리고 상월스님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1761년 산 이름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하였다.

정조 13년(1789년)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訥菴)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海鵬) 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 임금이 태어났다. 
이후 왕위에 오른 순조 임금은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이라고 쓴 편액[5]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다.

순조 22년(1798년)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하였다. 
순조 23년(1823) 3월 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다음해부터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 스님 등이 
6번째 중창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예전의 조계산, 선암사로 복칭(複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다
 


 

 
일제강점기 선암사 전경


 

1919년 조선총독부가 본말사법(本末寺法)[6]으로 전국의 사찰을 30본산(本山)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 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100여 동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당시 40여 동이 소실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이후 6.25 전쟁으로 꽤 많이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만 남았다. 게다가 후술되는 조계종과 태고종과의 갈등으로 지금까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갈등 때문에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선암사 일원은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 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뒷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3. 문화재[편집]

  • 사적 제507호 순천 선암사(順天 仙巖寺)
  • 명승 제65호 조계산 송광사·선암사 일원(曹溪山 松廣寺·仙岩寺 一圓)
  • 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東·西 三層石塔)
    보물 제400호 순천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955호 순천 선암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三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1044호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大覺國師 義天 眞影)
    보물 제1117호 순천 선암사 대각암 승탑(大覺庵 僧塔)
    보물 제1184호 순천 선암사 북 승탑(北 僧塔)
    보물 제1185호 순천 선암사 동 승탑(東 僧塔)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419호 순천 선암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釋迦牟尼佛 掛佛幀 및 附屬遺物 一括)
    보물 제1506호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先覺國師 道詵 眞影)
    보물 제1553호 순천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왕도(西浮屠庵 甘露王圖)
    보물 제1554호 순천 선암사 33조사도(三十三祖師圖)
    보물 제1558호 순천 선암사 동종(2008-1)(銅鍾)
    보물 제1561호 순천 선암사 동종(2008-2)(銅鍾)
    보물 순천 선암사 일주문(一柱門)
  • 천연기념물 제488호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지방문화재는 생략

태고종과 조계종간 소유권 분쟁 탓에 관리가 잘 안 돼서인지 선암사는 전국에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도난당한 절이다.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기준으로 선암사는 현재 총 8건 33점의 문화재를 도난 당한 상태인데 그림(불화)이 5건 27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부도(승탑) 2건 5점, 동종 1점도 포함돼있다. 2023년에 그림 3점을 찾아 회수해오는 등 조금씩 되찾고 있기는 한데 매우 더딘 상태이다.

선암사같은 교구본사급 대형 절에서 이런 수준으로 문화재를 많이 도난 당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며 조계종의 25개 교구본사들만 봐도 
나머지 24개는 대부분 0~5건 수준이고 이웃한 송광사의 경우도 1건 13점을 도난 당한 정도이다.





무량수각

 



수국

 



선암매

 



호남제일선원(안쪽 응진당)

 

응진당(응진전)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靈山會相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維摩經><增一阿含經>등에 나오는 제자를 모셔야 하나 

조선조에는 16나한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나한전, 영산전이라고 부른다. 

나한은 득도한 수도자들인 聖四課中 최상의 경지에 이른 분들을 말하며 응진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16나한들은 특별히 석가의 수기를 받아 미륵불이 하생 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의 불법수호를 위임받은 자들이다.
응진당은 선암사의 경역내에서 가장 뒷쪽에 있는 일종의 새로운 조그마한 승원이다. 

응진당이 본 승원 영역의 주불전이고 중심축 좌측에 달마전(達磨殿), 우측에 진영당(眞影堂)이 배치되어 있다. 

이 승원들은 칠전이라 불리 우고 있으며 1798년 해붕스님에 의하여 중창된 건물이다.
선암사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출목이익공 맞배기와집이다.

 



이른 봄에 오면 돌담 옆의 매화가 참 곱습니다.

 





상사화

 

꽃무릇(석산)과 같이 

꽃이 지고 난 가을부터 올라와 겨울을 푸르게 견디던 잎이 봄에 지고 난 뒤 여름에 꽃대가 올라와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습니다.

 



석산과 상사화는 같은 수선화과입니다.

 



대웅전

 




 

삼층석탑

 

  • 소설가 조정래의 아버지가 이 절의 스님이었다.
  • 1996년부터 1998년까지 방영된 KBS 대하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태조 이성계와 신덕왕후 사이에서 난 경순공주가 삭발하고 출가하는 장면을 이 사찰에서 촬영했다. 
  • 이 때 출연한 엑스트라들은 실제 선암사 승려들이다. 방영 이후 촬영 협조를 해준 선암사 승려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제작진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 또한, 경순공주를 연기한 김나우는 이 연기를 위해 실제로 삭발했는데, 김나우는 실제로도 불자이기도 했으며, 촬영 당시 부모님도 찾아와 참관했다고 한다. 
  • 비록 촬영은 여기서 했으나 실제로 경순공주는 청룡사에 의탁했으며, 그 곳은 멸망한 고려 왕실의 여성들이 기거하던 곳이기도 했다.
  •  



절집의 장독대

 



다시 강선루를 뒤로 하고 내려갑니다.

 

 
 6 Comments
일원  07.28 08:27  
마나님 모시고 좋은 곳 함깨 하셨군요~
선암사 주변에 맛집도 많은디
송광사 내려 가는 길의 보리밥집
아직도 있을려나? 연주곡을 감상하며
선암사 경내를 산책하고 싶네요~~~
무더운 날의 연속 쎤 하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강호원  07.28 12:48  
조계산은 등산은 오래 전 했는데
아마 보리밥집은 여전이 있을 겁니다.

선암사는 사시사철 아름다운 곳입니다.

고맙습니다.
해영  07.28 08:46  
부럽습니다.
순천 선암사는 제일 기억에 남는 여행지입니다.

고적한 절 분위기도 좋고 배롱나무 늘어진 벗나무. 낭만있는 해우소…

제가 선암사를 찾았을 때 두번 모두 비가 왔는데 사람없고 비 또한 낭만의 절 분위기를 업 시켜줘 그리움을 떠오르게 합니다.

젤로 부럽고 존경스러운 것은 누구와 : 아내와.  입니다.
강호원  07.28 12:50  
부러워 마시고 제수씨와 손 잡고 다니세요.
남는 게 시간 뿐일 터인데.
아직 젊은데 각 방도 쓰지 마시고. ㅎ

순천만에 오니 아내가,
몇 년 전 해영님과 연희와 점심 묵은 이야기 하네요.

고맙습니다.
최규다  07.28 12:04  
선생님  !
드디어  국경을 넘으셧습니다
제 처가가 신안에서 1시긴거리  나주 입니다 만
남도 기행 에  눈이  번쩍 들어옵니다
선생님
남도  여행  음식은 입에 맞으셨습니까  ?

ㅎㅎ
강호원  07.28 12:52  
나주가 처가이구만.
최선생 본가보다 좋은 곳이네. ㅎ

전부터 남도 여행 많이 다녔는데 곳곳마다 음식이 참 좋습디다.
본래 입이 걸어 아무거나 잘 묵는 스타일지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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