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날짜: 2,024. 7. 26~7.
2, 누구와: 아내와
아내가 아주 짤막한 이틀의 휴가를 내었습니다.
가까운 남도 여행을 합니다.
오래 전에 유홍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 답사기]를 보고 남도 여행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영암, 강진, 장흥, 보성 등등
근년에는 뜸했습니다.
남해고속국도를 달려 목포를 지나 압해대교를 건너 면소재지를 통과하여 조금 더 들어가니
천사대교가 나옵니다.
천사대교
천사대교(千四大橋)는 전라남도 신안군에 있는 국도 제2호선의 교량으로, 압해읍의 압해도와 암태면의 암태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이다.
국내 최초 사장교와 현수교를 동시에 배치한 교량[1]으로 총연장은 10.8km이며, 2019년 4월 4일 개통과 동시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었다.[2]
천사대교는 신안군 비금도, 도초도, 하의도, 신의도, 장산도, 안좌도, 팔금도, 암태도, 자은도 9개면 섬들이 다이아몬드(◇)모양으로 펼쳐진
일명 ‘신안 다이아몬드 제도’를 연결하는 최단거리 육상 교통망을 완성한다.[3]
개요
[편집]2001년 7월부터 압해도 송공항과 팔금도 고산리 6.7km 해상을 연결하는 다리를 건설하기 위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설계 실시를 추진하기 시작했으며[4],
2005년 11월에는 대략적인 조감도가 발표되어[5] 기획예산처에서 2005년 하반기 예비 타당성 조사사업으로 선정했다.[6]
2007년 정부 예산에 새천년대교 설계비 10억원이 반영되어[7] 2008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에서 2011년 착공 목표로 기본계획 용역이 진행되었으며[8],
2008년 9월 10일 정부에서 발표한 '5+2 광역경제권 발전계획' 30개 선도프로젝트에 새천년대교 건설 사업이 포함되어 건설에 탄력을 받게 되었다.[9]
추진 중 기존 설계 교량이 3000t급 선박만 통항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대형 선박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주장이 목포해양대학교 교직원들을 통해 제기되었으며[10],
이에 대해 익산지방국토관리청이 관계 부서와 협의하여 5000t급 선박이 통행할 수 있도록 설계가 변경되었다.[11]
또한 초창기 계획 당시 2차로로 추진되었던 교량 폭도 향후 늘어날 교통 수요에 대응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가변차로를 포함한 3차로로 확장하여 건설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12]
2009년 3월 16일 조달청에서 총 사업비 5500억원으로 일괄입찰(턴키) 공고가 게시되었으며[13]
2010년 9월 15일에 착공해 2019년 4월 4일에 개통과 동시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되었다.
천사대교
다리를 건너 조금 진행하다가 되돌아 나옵니다.
암태도, 자은도 등에 볼거리 있다던데 포기하고.
다음은 순천으로 이동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선암사로 들어갑니다.
1,970년대 중반에 처음 와 본 선암사,
그때만 해도 퇴락한 절로 지금처럼 중수가 다 안 된 상태의 고색창연한 모습이 아름다웠었는데....
장마기간이라 수량이 풍부합니다.
승선교
선암사 절보다 더 알려진 아름다운 홍예교(무지개다리)입니다.
보물로 지정할 만합니다.
단풍철이면 더 아름답습니다.
300년의 세월을 견뎌냈습니다.
남무아미타불~~~~~
강선루
신선이 내려와 노닐었나 봅니다.
놀다가 위 승선교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 갔고......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아래 선암사에 관한 글은 [나무위키]에서 따온 것입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범종루(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뒷쪽 편액인데
古 淸凉山 海川寺(고 청량산 해천사) 라고 썼습니다
신라 말 이창주(二刱主)[4]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선암사로 지었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육조고사
이후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상월새봉 스님은 중창불사뿐만 아니라 1734~35년에 두 차례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한다.
정조 13년(1789년)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訥菴)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海鵬) 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 임금이 태어났다.
순조 22년(1798년)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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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선암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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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100여 동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당시 40여 동이 소실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이후 6.25 전쟁으로 꽤 많이 소실되어
선암사 일원은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 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뒷간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정호승, 선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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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507호 순천 선암사(順天 仙巖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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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395호 순천 선암사 동·서 삼층석탑(東·西 三層石塔)
보물 제400호 순천 선암사 승선교(昇仙橋)
보물 제955호 순천 선암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三層石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1044호 순천 선암사 대각국사 의천 진영(大覺國師 義天 眞影)
보물 제1117호 순천 선암사 대각암 승탑(大覺庵 僧塔)
보물 제1184호 순천 선암사 북 승탑(北 僧塔)
보물 제1185호 순천 선암사 동 승탑(東 僧塔)
보물 제1311호 순천 선암사 대웅전(大雄殿)
보물 제1419호 순천 선암사 석가모니불 괘불탱 및 부속유물 일괄(釋迦牟尼佛 掛佛幀 및 附屬遺物 一括)
보물 제1506호 순천 선암사 선각국사 도선 진영(先覺國師 道詵 眞影)
보물 제1553호 순천 선암사 서부도암 감로왕도(西浮屠庵 甘露王圖)
보물 제1554호 순천 선암사 33조사도(三十三祖師圖)
보물 제1558호 순천 선암사 동종(2008-1)(銅鍾)
보물 제1561호 순천 선암사 동종(2008-2)(銅鍾)
보물 순천 선암사 일주문(一柱門) -
천연기념물 제488호 순천 선암사 선암매(仙巖梅)
태고종과 조계종간 소유권 분쟁 탓에 관리가 잘 안 돼서인지 선암사는 전국에서 문화재를 가장 많이 도난당한 절이다.
문화재청 도난문화재 정보 기준으로 선암사는 현재 총 8건 33점의 문화재를 도난 당한 상태인데 그림(불화)이 5건 27점으로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선암사같은 교구본사급 대형 절에서 이런 수준으로 문화재를 많이 도난 당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며 조계종의 25개 교구본사들만 봐도


무량수각

수국

선암매

호남제일선원(안쪽 응진당)
응진당(응진전)은 석가모니의 설법장인 靈山會相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維摩經><增一阿含經>등에 나오는 제자를 모셔야 하나
조선조에는 16나한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나한전, 영산전이라고 부른다.
나한은 득도한 수도자들인 聖四課中 최상의 경지에 이른 분들을 말하며 응진으로 의역되기도 한다.
16나한들은 특별히 석가의 수기를 받아 미륵불이 하생 할 때까지 열반에 들지 않고 이 세상의 불법수호를 위임받은 자들이다.
응진당은 선암사의 경역내에서 가장 뒷쪽에 있는 일종의 새로운 조그마한 승원이다.
응진당이 본 승원 영역의 주불전이고 중심축 좌측에 달마전(達磨殿), 우측에 진영당(眞影堂)이 배치되어 있다.
이 승원들은 칠전이라 불리 우고 있으며 1798년 해붕스님에 의하여 중창된 건물이다.
선암사 응진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출목이익공 맞배기와집이다.

이른 봄에 오면 돌담 옆의 매화가 참 곱습니다.


상사화
꽃무릇(석산)과 같이
꽃이 지고 난 가을부터 올라와 겨울을 푸르게 견디던 잎이 봄에 지고 난 뒤 여름에 꽃대가 올라와 잎과 꽃이 서로 만날 수 없습니다.

석산과 상사화는 같은 수선화과입니다.

대웅전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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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조정래의 아버지가 이 절의 스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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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출연한 엑스트라들은 실제 선암사 승려들이다. 방영 이후 촬영 협조를 해준 선암사 승려들에게 감사를 표한다는 제작진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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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경순공주를 연기한 김나우는 이 연기를 위해 실제로 삭발했는데, 김나우는 실제로도 불자이기도 했으며, 촬영 당시 부모님도 찾아와 참관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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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촬영은 여기서 했으나 실제로 경순공주는 청룡사에 의탁했으며, 그 곳은 멸망한 고려 왕실의 여성들이 기거하던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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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집의 장독대

다시 강선루를 뒤로 하고 내려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