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영원봉
2, 언제: 2,024. 11. 14.(목, 흐림)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영원사- 빗기재- 영원봉- 벌바위- 영원령- 영원사(약 4.4km)
5, 소요 시간: 3시간 40분
6, 시간대 별 구간
08: 17.- 영원사 주차장
08: 33.- 등로
09: 06.- 빗기재
09: 54.- 영원봉(~ 09: 57.)
10: 08.- 벌바위(~ 10: 20.)
10: 53.- 영원령
11: 57.- 주차장
7, 산행소묘
오늘은 수학능력시험이 있는 날인데 학교장 재량휴업일이라 쉽니다.
모처럼 주중 산행을 합니다.
08: 17. 절을 향해 오릅니다.
영원사는 고도 900에 앉았는데 빨강, 노랑 장미가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처마 끝 풍경 아래의 삼정산능선은 구름이 누르고 있고.
무량수전
극락전(極樂殿)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阿彌陀佛)을 본존불로 모신 법당이다.
대한민국 사찰에서는 대웅전과 더불어 중요한 건축물이다.
극락전을 높여서 극락보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미타불을 직접 가르켜 아미타전 또는 미타전으로 부르기도 한다.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의 권능을 일컫는 이름이다.극락을 뜻하는 수마제라는 단어를 써서 수마제전(須摩提殿)이라고도 한다.
이상향인 극락이 서쪽에 있으므로 보통 동향으로 배치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이 서쪽을 향하도록 배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서 봉인되어 있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맨드라미도 아직 건재하고,
08: 33. 절 경내를 벗어나 등로로 오릅니다.
나뭇잎은 다 떨어져 스산한 기운이 감돕니다.
09: 06. 빗기재에 올라섰습니다.
우회전하면 상무주암으로 가는데 좌회전하여 능선을 따라 진행합니다.
나뭇가지 사이로 바래봉과 덕두산이 보입니다.
오른쪽 끄트머리에 인월.
바래봉을 조금 당겨서
고만고만한 작은 봉우리를 예닐곱 개 넘어,
09: 54. 영원봉에 도착합니다.
예전에는 작은 돌 표지석이 놓였는데 비지정 등로라 없앴네요.
삼각측량점만.
지나온 능선과 가운데 창암산, 장구목과 창암능선, 그 뒤로 초암능, 두류능선
멀리 상내봉과 오른쪽 새봉, 맨 뒤 희미한 왕산까지 보입니다.
아래에 양정마을도 보이고.
날은 흐리지만 이만한 조망이면 복 받은 겁니다.
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하봉, 중봉, 상봉, 제석봉, 장터목, 연하봉, .....
지리산 주능선이 장쾌하게 흐릅니다.
엷은 박무가 허리를 두른 오랫동안 못 가본 상봉을 줌으로 당겨 봅니다.
햇살이 비췄으면 더 아름다울 터인데 조금 아쉽네요.
산자락 마다 추색은 짙어 가고....
10: 08. 벌바위에 닿았습니다.
조망이 참 좋은 곳입니다.
삼정산능선이 삼각봉으로 치닫고, 가운데 명선봉과 오른쪽 토끼봉
당초 계획은 오랜만에 명선봉을 한 번 가려고 했는데 다섯 시 반에 알람을 맞추었는데도
중간에 잠이 깨어 출발 때 컨디션이 별로라 계획을 짧은 코스로 급 수정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도.
오른쪽 반야봉까지
주능선에서 파노라마로 서북능선으로 이어집니다.
가운데 조그마한 고리봉부터 묘봉치, 만복대, 정령치, 또 다른 고리봉으로.
아래 와운마을
전에 지리99 회원 중 [와운]을 닉네임으로 쓰는 부산의 여성 산꾼이 계셨는데 산을 놓은 지 오래되었답니다.
서북능선을 더 당기니 정령치가 선명합니다.
발 아래에 천년송능선이 와운마을로 짧게 내려가고,
왼쪽 명선남릉과 심마니능선, 오른쪽은 영원봉서능, 만수천 건너 세걸산동능이 반선으로 내려옵니다.
세걸산에서 덕두산까지
솔가지 사이로 잡아본 중봉, 상봉과 지리 주능선
한데 이 전망 좋은 곳에 무시무시한 [罰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전설이 있습니다.
천 오백도 더 지난 마한시대.
와운 마을이 세 번째 옮겨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기 전.
이 마을엔 단 두 가구만이 거주하던 때가 있었다.
이웃한 이 두 가구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오손도손 잘 살아가고 있었다.
두 집중 한 집의 부인은 무던한 미모인 반면 다른 한 집의 부인은 절세가인이었다.
언젠가부터 무던한 부인을 둔 남자는 절세가인의 부인에게 흑심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남자는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 함께 마을 뒤 높은 바위 절벽으로 향하게 되었다.
더 크고 좋은 석이버섯을 따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벼랑으로 줄을 잡고 내려가야 했다.
미인을 부인으로 거느린 남자가 줄을 잡고 바위 절벽 아래로 내려가고, 한참 석이버섯을 따고 있을 때
절벽 위에서 평소 흑심을 품고 있든 남자는 해서는 안 될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고 만다.
고의로 줄을 끊어 추락사를 시켜버린 후, 전모를 숨기고 자신이 죽인 남자의 부인을 새 부인으로 맞아 가정을 꾸린다.
세월은 흘러 둘 사이에 아들, 딸이 태어나고 아무 문제없이 잘 살아가던 중
소나기가 억수같이 퍼붓던 날, 아마 술도 한두 잔 하게 되었을 것이고, 우수에 잠겼음인지 양심의 가책인지,
남자는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일을 부인에게 털어놓게 된다.
자식까지 생긴 마당에 별 탈이야 있을까 하는 생각도 했을지 모른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부인은 바로 사건이 일어난 바위로 달려가 전 남편의 시신을 확인하게 되고,
관청으로 달려가 사건의 전말을 고하게 된다.
관청에서는 이 남자에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함무라비 법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린다.
이 남자를 그곳의 높은 바위 절벽에서 떨어뜨려 죽게 한다.
이후 벌을 내린 바위라는 의미에서 그곳은 '벌바위'라 불리게 된다.
10: 20. 내려갑니다.
벌바위
능선 잘록한 곳이 영원령인데 그 직전 소나무가 있는 1,169봉 직전에,
능선 왼쪽에 떠억하니 형님 표지기가 있습니다.
영원령이 지척인데 웬 표지기를? 하고,
하던대로 굵어진 가지에 매인 것을 끌러 잔 가지로 바꾸어 매었는데 사진이 흐립니다.
형님, 죄송합니다. 불초 아우를 용서하시옵소서~~~~
살펴보니 토끼길 같은 흔적이 있습니다.
위 트랙에 파란점을 찍었는데 잘 보이지 않죠?
조금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수조 근방 합수부로 떨어질 것 같고,
아니면 영원재길 옆의 지계곡으로 내려서면 곧 등로와 합류할 것 같습니다.
이 영감님이 얼마되지 않은 거리를 질러 가시려고 째고 내려갔으까?
옛길이 있는 걸 알았으까?
천국에 가서 물어볼 일입니다. ㅎ
위성지도로 봉께 대충 감이 오시지요?
10: 53. 영원령입니다.
좌회전하여 내립니다.

건계곡 너덜겅이라 초반은 길 흔적이 아예 없습니다.
풍도목도 많고.

이 木선생께서는 무슨 풍파에 이렇게 옹이가 많이 박혔습니까?
성한 데라고는 없네요.

반쯤 내려가니 옛날 길 흔적이 보입니다.
이 정도면 산판도로급입니다.
흙이 쓸려가고 없어 디디기 조심스럽지만.

절집이 가까워지니 푹신한 길이 나옵니다.

영원사 한 300 미터 앞두고 또 뜬금없이 천연송님 표지를 만납니다. 오른쪽에.
절을 거치지 않고 도솔암 입구까지 내려가는 길이 있는 모양입니다.

꽃향유도 꿋꿋하고,

아침에 들렀던 절에 오전이 다 가지 않아 다시 왔습니다.


무청도 일용할 양식이고.....

콩은 불려 삶아 메주를 만들 심산인 것같고,

저 아래 차량은 제 것뿐이네요.
하기야 평일이니 당연한겠지요.

만 날이면 27년이 넘는 세월인데......
그것도 3차라니 한 세대씩 기도를 하는 모양입니다.

무량수전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이다.
부석사의 주불전이며, 현재 한국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 중 하나이다.
'무량수'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뜻이며, 아미타불이 끝없는 지혜와 영원한 생명을 지녔다는 의미를 가진다.
최순우 교수의 역저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로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많이 알려졌습니다.

11: 57. 주차장 도착으로 오늘의 짧은 산행을 마감합니다.

속세는 만추지절이만 이제 산중은 곧 겨울채비에 들어갑니다.
겨울에 손발 시린 저는 한겨울은 겁이 납니다. ㅎ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В осенний сад зовут меня
Воспоминания мои.
가을의 정원으로 나를 부르는
지나간 추억들
Горит оранжевый наряд
주위는 주홍색 차림으로 불타오르고
И воздух свеж,
И журавли курлычат в небе.
신선한 공기와 하늘에서
날고 있는 학들
И кажется, что мы с тобой
우리는 결코 헤어지지 않을거야
Не расставались никогда.
서로 영원히 이별하지 않고
Ты, словно солнце и вода,
마치 공기와 물처럼
Живёшь со мной, не разлучаясь.
우리는 함께 있을 줄 알았어요
И так подряд уж много лет,
그리고 긴 세월이 지나고
Когда приходит осень вновь.
가을이 다시 찾아오면
Хочу найти затихший сад,
난 조용한 정원을 찾고 싶어요
Чтоб все мечты,
И всю любовь, Вернула память.
모든 꿈, 모든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회상할 거에요
И голос твой услышу вдруг.
따뜻한 불꽃처럼 과거 속으로 나를 부르듯
Слова, как тёплые огни,
따뜻한 빛과 같은 목소리
Зовут меня в былые дни.
그들은 옛날의 나를 불러 들이네
Мне не забыть тебя- я знаю..
나는 알고 있어요. 나는 결코 당신을 잊지
못한다는 것을..
[출처] 안나 게르만(Anna German)/ 가을의 노래(Osennyaya Pesnya)|작성자 swan


청아한 목소리로 우수에 젖은 러시아 로망스의 백미를
들려주었던 우즈베키스탄 출생인 안나 게르만은
1982년 46살의 나이로 짧은 삶을 마감했지만 그녀가
남긴 러시아의 로망스들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습니다.
허밍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슬픈 이별을 예감케 하고,
가사와 멜로디가 러시아 문학, 예술, 음악의 높은 수준을
말해 줍니다.
가슴 저미는 이별을 이처럼 아름다움으로 노래할 수 있음은,
그 처절한 이별의 슬픔을 사랑으로 승화시켰기에 가능할 테지요.
안나 게르만(Aanna German)은
우즈베키스탄의 작은 마을 우르겐치에서 1936년에 태어났습니다.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윈 그녀는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성이 '게르만'인 폴란드인을 아버지로 맞게 됩니다.
그러나 새아버지마저도 전쟁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안나는 어머니와 함께 새아버지의 주검을 찾아 폴란드로
이민을 떠납니다.
10살의 소녀 안나 게르만에게 이제 폴란드어는 모국어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우연한 기회로 음악을 시작하였습니다.
지질학을 전공하던 그녀가 친구에게 이끌려 무대에 서게
된 것이 음악 인생의 전기가 되었는데 얼마 후 열린 국제
가요제에서 최고상을 받아 그녀는 순회공연을 갖게 됩니다.
1964년 오폴레에서 열린 제2회 폴란드송 페스티발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되고,
소련의 국영 레코드사인 멜로디아와 첫 앨범을 발매하며
모스크바에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1967년에 그녀는 산레모 가요제에 참가하여 이태리의
Dalida와 실력을 겨루기도 했는데 그녀는 이 때 부터
큰 성공을 거두면서 이태리에서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성공의 탄탄대로를 걷던 안나는 자동차 사고로
인해 거의 죽음에 이를 뻔 하여 모든 음악 생활을 중단하게 됩니다.
그 후1970년에 멜로디아의 편집장인 아나 까찰리나의 권유로
당시 소련 최고의 작곡가인 알렉산드라 빠흐무또바의 '희망'을
녹음하게 되고, 또한 러시아 로망스를 주로 노래하면서
그녀의 명성이 소련에서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음악활동을 재개한 그녀는 미국에서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지만,
1980년 호주에서 가진 공연을 마지막으로, 다시 병마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바르샤바에서 46세(1982년)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맑고 부드러운 음색과 풍부한 성량으로 러시아 로망스를 더욱 아름다운 장르로 승화시켰으며,
특히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소화해서 러시아 음악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해 국민가수 알라 뿌가쵸바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출처] 안나 게르만(Anna German)/ 가을의 노래(Osennyaya Pesnya)|작성자 sw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