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동강
2, 언제: 2,026. 1. 10.(토, 바람 거셈)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동강미을- 운서- 세동- 용유담(7.4km)
5, 소요시간: 2시간 35분
6, 시간대 별 구간
08: 38.- 동강마을
09: 00.- 구시락재
09: 13.- 운서마을(~ 09: 23.)
09: 32.- 적조암 삼거리
10: 15.- 세동마을
11: 08.- 용유담
11: 13.- 정류소
7, 산행소묘
11월 중순 구곡산 신행 후 허리 아픈 것이 재발했습니다.
6월 중순에 처음 아프던 것이 두 달 남짓 꾸준한 운동으로 많이 호전되어
이전과 같이 산행(8회)도 하고 테니스도 병행했지요.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그게 이니었습니다.
과욕지화라고 덜컥 다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한 보름 정도는 걷기를 할 정도였는데 12월 초에
엄청시리 많이 아파서 다시 MRI를 찍어 보니,
(엠알아이 쵤영(20분 소요)도 바로 누우면 너무 아파 도저히 촬영을 할 수가 없어 진통제 맞고
시도해도 마찬가지라 마약성 진통제까지 맞고 겨우 찍었습니다.)
전에 있던 4,5번 요추 협착증과 함께
3번 디스크가 전번보다 많이 튀어나와 신경을 압박하여 통증이 심했습니다.
할 수 없이 입워하여 [신경성형술] 시술을 받았습니다.
시술 후 일주일은 통증이 그대로라 작대기 짚고 다녔는데
이후 서서히 통증이 사라져 다행이 2주가 지난 후부터 정상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지리산 골골 능선을 누비며 지리산 시를 많이 쓴 이성부 시인은 [벽소령 내음]이라는
아름다운 시를 남겼지요.
저는 이제 주능선 높은 곳은 감히 꿈도 못 꾸고 대신 지리산둘레길 자락이나마
걸으며 지리산 내음을 맡아보기로 하고 집을 나섭니다.
두 달만에.
08: 38. 동강마을에서 출발합니다.

동강마을 뒤로 올라 오른쪽 잘록한 고개,
구시락재를 넘어갈 것입니다.


마을 바로 위 당산나무입니다.
유두류록에 등장하는 화암입니다.

안내판에 떠억하니 [지리99 유두루록 탐구산행팀]이름이 나옵니다.
550년 전 기록을 복원했습니다.
가객님 필생의 노고의 결과입니다.
20년 전 탐구팀 좌장이신 가객님의 권유로 이 길을 수 차례 오르내렸던 기억으로 감회가 새롭고;
폐사지 찾는다고 헤매던 때 말석에서 함께 해 가슴이 뿌듯합니다.
고려 말 장수로 변방을 떠돌며 구국의 공을 많이 세웠던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시작된
易姓革命(역성혁명, 나라가 王씨 고려에서 李씨의 조선으로 성이 바뀌었다고.)
이 성공한 1,392년 조선조의 개국 후 80년인 초기,
함양군수이던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지리산 유람(?)을 하고 유두류록을 남겼습니다.
550년 전 당시에는 등산 이라는 개념이 없었을 뿐더러 양반 신분이던 군수님이 하인들을 대동한 산행이었으니
유람이라고 이름한 것 같습니다.

엄천강 건너 원터, 오른쪽 동호마을 뒤로 베리산
그 너머 법화산 끝자락 지곡마을에 동강마을의 지리99 문장가 자매들,
보스, 카르멘, 유키, 해순( 그 아래 여동생과 남동생 하나가 더 있습니다.)
華南초등학교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폐고가 되었지만.
법화산 남쪽자락이라꼬.

둘레길은 엄천을 따라 이어집니다.
용유담에서 시작히는 [화산12곡]의 비경도 이 부근에 몰려 있습니다.
맨 오른쪽 지곡마을의 함허정, 그 위 엄뢰, 엄천교 아래 우계도,
원터마을 앞의 칠리탄, 그 위로 칠리대, 사랑소,
한남교 아래에 화남대와 독립정터,
한남교 위에 한오대,.....

꽃봉산 어깨너머로 늦은 아침해가 떠오릅니다.

우와!!!!
마산의 의사선생님 [다우]님이 즐겨 타던 할리데이비슨이 지리산 자락 엄천강하고도
지리산둘레길 가 독가에 근사하게 자리했네요.
다우님은 오랜 투병으로 고생 중이지만.
그 와중에도 젊을 때 작성한 세계 여행 버킷리스트를 차근차근 실행 중입니다.
대단한 의지의 한국인입니다.

응달에는 아직 얼음이...
이 날 낮기온은 모처럼 영상 7도인데 바람이 태풍급에 맞먹는 강풍이 불었습니다.

09: 13. 운서마을로 들어섭니다.

지리99의 보물, 가객 류정자 어르신의 자택입니다.
운서마을 제일 윗쪽 둘레길 가에 자리잡았습니다.

무청(시래기)은 바싹 말라 깃발처럼 바람에 나부끼고.....

버섯, 도라지도 건조가 끝났고...
문을 두드리니 기척이 없어 되돌아서려다가
모처럼 왔는데....
계속 두드리니 부석한 얼굴로 문을 엽니다.
깜빡 잠이 들었다고.

街客 류정자!
우리 나이로 올해 여든이십니다.
말이 필요없는 지리99의 산 증인입니다.
20여 년 세월을 점필재 선생의 유두류록을 붙잡고 천착한 결과가
책으로 출간되었고,
함양군에서도 그 노고를 인정하여 폐쇄되었던 산길을 복원하여 곧 개방할 것이라고 합니다.
형형하던 눈빛과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세월을 거스를 수 없어
순화되고 누그러워졌지만 열정만은 아직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듣기로는 마천 강청마을에 지겟자루 놓은 지리99의 한학자 엉겅퀴 이재구 선생과 꾸준한 교유로
힘 닿는대로 지리산 자락에 묻힌 여러 사적들의 탐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운서마을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살다가 다시 서울에서 생활하던 류선생님은
둘째 아들 작고 후 선생이 사랑한 지리산 자락에 터를 옮겼습니다.
유두류록의 흔적이 서린 함양군 휴천면 운서마을에.
아래는 2,015년 제 산행기 중 일부입니다.
"오늘 4월 27일(월요일), 삼 년을 훑었던 정시한 선생의 [산중일기] 답사를 마무리 하려고
삼정산 아래 산행 계획이 있었습니다.
저와 단둘이.
하지만 못 오신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해영 님으로부터.
여인의 둘째 아들은 국내 유수의 대학을 나와 고신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네델란드 유학을 하고;
장신대에서 두 번째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논문도 완성단계였고......
美人薄命(미인박명)이라 했습니까?
아주 똑똑하고 효심 깊었던 아들은 44년간 어머니와 같이 살다가 지난 주 갑자기 하늘나라로 먼저 갔습니다.
지리산 종주를 같이 했던 그 아들이.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습니다.

"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저 험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기구한 운명이지만 질긴 생명력으로 자라는 나무보다 짧은 그야말로 찰나인생입니다.
길어야 백 년 인생이지요.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렇게 갑니다.
지금부터 백 년 후엔 지금 세상에 사는 사람 거의가 다 죽고 없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精(정)을 받고 어머니의 몸을 빌려 이 세상에 온 자식은
태어나며 부모의 기쁨이었고 자라면서 자랑이었고 장성하여서는
부모의 큰 언덕으로 성장했습니다.
한 번 오면 반드시 가야하는 것이 신의 섭리이고 자연의 이치이고......
부모가 돌아가시는 이별도 가슴 아픈 일일진대 하물며 자식을 먼저 보내는 일이야
말로 무슨 표현을 하겠습니까?...."
한데, 이제 바깓어르신이 많이 편찮으셔서 주중에는 부산으로 가서 간병을 하고
주말에만 운서에 머문다고 하십니다.
생로병사가 인간의 숙명이지만 안타깝습니다.


적조암 삼거리
동강마을 뒤쪽으로도 꽃봉산으로 올라 독바위 방향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만,

보통 여기에서 적조암 거쳐 독바위로 진행합니다.
"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군수로 재직하며 남긴 지리산 답사기 [유두류록]을 들고 선생이 걸었던 길을 찾아 탐구팀이 수 년간, 수십 번의
발품을 팔아 완벽하게 [신 유두류록]으로 복원한 것은 지리99 최대의 쾌거였고 빛나는 성과였습니다.
그 중심에 이 여인이 있었습니다.
함양군도 그 자료를 바탕으로 엄천강- 화암- 지장사- 선열암, 고열암, 신열암, 의논대 등에 표지판을 세웠습니다. "

오른쪽 바위가 양화대



와룡대와 법화산

와룡대 뒷쪽마을인 문정리(문상, 문하)가 화산12곡의 작가 강용하가 살았던 집성촌입니다.

아래는 강용하의 화산12곡 발굴에 즈음한 엉겅퀴 이재구 선생의 변입니다.
○ 군말
"꼭대님이 하루는 내게 말하였다. 새로 발굴한 화산12곡을 하나씩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내가 대답했지. 용유담 같은 경우는 자료가 넘쳐나지만, 나머지 11곡은 자료가 너무 없어서 더 이상 정리할 것도 없다고...
또 그라데. 있든 없든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내놓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 처음 누가 지리산 능선이나 계곡 이름을 잘못 붙였다 해도
시간이 지나면 족보도 없는 이름이 버젓이 불려지듯, 화산12곡도 그렇게 되기 전에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겠소?
어떻게 해야 족보 없는 이름이 불리어지지 않을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래서 한껏 뻗대 보았다. :
아, 재미도 없고 별 관심도 없는 거 머할라꼬 그래쌓소?
흔들어도 끄덕도 않는 꼭대님 : 그것이 우리 지리99의 역사적 소명이 아닐까? 물에 잠길지도 모르고….
난감하였다. 역사적 소명 의식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지멋대로 살다가 흥이 나면 돈 안되는 짓에 쪼매 관심을 보이는 정도인 나,
꼭대님이 그렇게 말한다꼬 없던 소명이 갑자기 생겨날 리도 만무하고….
여전히 재미없고 모범적인 꼭대님 : 어쨌든 시작한 사람이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아니오?
나는 마무리할 것도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아! 괜히 시작했어~.
군말이 너무 길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만, 시작은 했지만 언제 끝날지, 12곡을 다 끝낼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솔직히 약속은 못하겠다."
이렇게 해서 이재구 선생의 각고의 노력으로
유두류록 탐구에 이은 지리99의 빛나는 업적이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아름다운 필치로.


병담

법화산능선
바람이 세차게 불어 진행이 어렵습니다.
다행이 기온이 높아 늙은이 얼어죽을 정도는 아니네요.




용유교가 보입니다.
뒤에 금대산과 백운산


11: 08 용유담입니다.


수잠탄
강용하(姜龍夏 1840∼1908)의 수잠탄
古迹驢巖血(고적려암혈) 옛날 마적도사와 당나귀바위의 핏자국을
野老至今說(야로지금설) 시골 노인은 아직도 이야기하네.
下上屬玉飛(하상촉옥비) 아래위로 해오라기 날고
出沒錦花列(출몰금화열) 아름다운 꽃무리 숨었다 드러났다 하네.
鐵杖何處拄(철장하처주) 쇠지팡이는 어디를 받쳤던가?
石局空留設(석국공류설) 바위에 새긴 바둑판만 헛되이 남아 있네.
俯看神魂懍(부간신혼름) 내려다보니 정신이 다 혼미하여
頻住行人轍(번주행인철) 자주 멈춰 서서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네.
번역 이재구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깃발이 펄럭입니다.

11: 13. 용유담 정류소 도착으로 오늘의 짧은 산행을 마감합니다.

엄천교에서 본 법화산

하류쪽으로 왕산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좋은 산행 많이 하십시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