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서진암
2, 언제: 2,026. 1. 24.(토, 맑음)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매동마을- 둘레길- 서진암- 서룡산남릉- 백장암- 지방도- 매동마을(약 7.1km)
5, 소요시간: 3시간 27분
6, 시간대 별 구간
08: 42.- 매동마을
09: 14.- 서진암 입구
09: 47.- 서진암(~ 09: 52.)
10: 31.- 백장암 옛길
11: 10.- 백장암(~ 11: 17.)
12: 09.- 매동마을
7, 산행소묘
새벽에 눈이 조금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기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날씨라 집을 나섭니다.
바람은 제법 거세지만.

예보대로 눈이 조금 내린 매동마을 입구에서
08: 42. 출발합니다.

지난 번 걸은 중황리 마을에도 사과밭이 있더니
매동마을도 사과가 특산물이네요.
남원시 운봉, 인월, 산내면이 고지대로 사과 재배를 많이 합니다.


보건소에서 마을 주민을 위해 겨울 석 달 동안 건강교실을 운영하네요.

동복 오씨 공동 묘지가 있나봅니다.

삼정산 너머 주능이 조금 보입니다.

뒤돌아 본 오른쪽 매동마을
오른쪽 멀리 덕두산, 바래봉은 눈이 많이 쌓였습니다.
바래봉 눈귀경 한 번 가야겠습니다.
겨울 연례 행사대로.

가운데가 산내면에서 뱀사골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묘지 조성을 잘 해놓았습니다.

인월 지나 중군리 거쳐 장항마을에서 매동마을 뒤로 돌아오는 둘레길과 만납니다.
상황마을로 올라 등구재를 넘어가서 지난 번 출발지인 금계마을로 내려가는 길입니다.

가야할 서진암이 앉은 서룡산남릉 자락이 보입니다.
가운데 골쯤 됩니다.


출발지에서 삼십 여 분 걸어
09: 14.서진암 입구 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임도를 따라 직진하면 둘레길로 상황마을로 갑니다.
좌회전하여 오릅니다.


서진암 스님이 일용할 양식과 생필품을 져다 나르는 지게입니다.
스님은 자주 바뀌지만 한 분만 주석하시는 것 같던데 지게는 세 개군요.
아마 짐의 무게나 부피에 따라 적당한 것을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승탑.(보통 부도라고 부릅니다만 승탑이 맞습니다. 스님의 사리를 안치)은
보통 절집 부근 조금 비껴난 곳에 세우는데,
이 승탑은 한참 아래 서진암 입구에 모셨습니다.
서룡산 아래 서진암에서 오랫동안 계셨던 스님이었던지 묘호가 [서룡당]입니다.
5~6년 전 이 길을 오를 때는 못 보았던 것 같습니다.

몇 년의 세월에 몇 사람의 손길이 보태져
이 탑이 만들어졌을까~~~

주능은 구름이 머물렀습니다.
지리산은 높습니다.


서진암

09: 47 절집으로 들어섭니다.
입구에 돌을 세우고 [서진암] 글을 새겼군요.
이것도 전에 없던 것입니다.
스님이 아침에 눈을 쓸었습니다.

칠성각


이 편액의 글씨가 예사롭지 않죠?
[白我書]라 새겼습니다.
서진암 편액은 백아 양지환 선생이 쓴 것입니다.

백아 양지환 (白我 梁址煥)은 백아라는 호(號) 외에도 백두산인(白頭山人) 죽리관(竹裏館)
무아자(無我者)라는 별도의 아호(雅號)를 쓰기도 했다.
백아 양지환 (白我 梁址煥)은 독립 투사 육영사업가 시서화에 능한 문화예술인 근대 체육을 정립한 체육인이며
또한 한국 다도(茶道) 기초를 마련한 다인(茶人)이다.
양지환은 독립군 군자금을 비밀리에 제공 하였으며 지하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로써 민족주의자 였다.
그는 한번도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말한 적이 없다.
해방후 서대문 부근에 숙소를 정한 후 경교장(京橋莊)에서 백범 김구 (白凡 金九) 주석(主席)을 보필하였다.
백범 주석 서거후에는 고향 함양에서 칩거(蟄居) 했다.
시, 서화를 하고 차(茶)를 마시면서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의 현판은 실상사(實相寺) 명부전(冥府殿) 서진암(瑞眞庵) 등구정(登九亭)등 많은 현판에 남아 있다.
서진암 현판은 계유년(癸酉年) 1933년에 썼다.
서진암은 큰 스님들의 수행도량처 이기도 했지만 양지환 안희제 최범술 주기철 등이 비밀리에 모여
독립운동에 대한 비밀회담을 한 장소이기도 했으며
일본경찰에 쫓기는 독립투사들을 보호하는 유서깊은 암자였으며 또 독립자금의 은신처 이기도 했다.
[출처] 백아(白我) 양지환(梁址煥)|작성자 mix2011

서진암은 원래 세암 또는 세진암이라 하였다.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822년(순조 22)에 불탄 후,
1827년에 성윤두타와 대영비구가 다시 세웠다.
1917년에 운담기순이 기금을 모아 중건하였다.
1927년에는 세진암을 서진암으로
명칭 변경을 신청해 총독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1933년 화재로 불탄 것을 1935년에 중수하였다.

현재 서진암에는 독특한 손모양을 한 불상과,
1516년(중종 11)에 만든 석조 나한상 외 4구의 나한상이 있다.
나한은 깨달음을 얻은 조사를 일컫는 것으로
16나한, 18나한, 500나한 등으로 조성되었다.
실상사 서진암에는 현재 석조 나한좌상이 5구가 있는데,
"정덕십일년병자화주경희"라는 글자가 둥글게 새겨져 있다.
[출처] 서진암(瑞眞庵)/전북 남원시 산내면|작성자 목야
원 불상은 전북 금산사(남원 산내면에 있는 실상사의 본사)에 있고
서진암에 모셔져 있는 것은 모사품이라는 엉겅퀴님의 해설입니다.

아침에 눈도 쓸고, 방한화도 놓였는데 인기척이 없어
까치발로 둘러보고 되돌아 나옵니다.
수도 정진하는데 방해하면 경범죄 처벌법 위반이 된께.
그런데 눈에 찍힌 발자국이 작아 신발을 보니 역시 작네요.
남녀 공용 방한화 같은데 비구니스님이신가?

나뭇가지에 가렸지만
앞의 삼정산, 뒤에 명선봉, 토끼봉, 반야봉이 가늠됩니다.
서진암 조망도 나무가 자라니 자꾸 가립니다.
여름이면 더할 것이고.

반야봉
09: 52. 서진암을 나옵니다.

서진암에서 백장암 쪽으로 조금 진행하여 서룡산에서 내려오는 남릉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내려서면
백장암으로 바로 갈 수 있는데
남릉을 타고 더 내립니다, 백장암 옛길로 돌아갑니다.
산행 거리가 너무 짧아서 쪼매이라도 늘이려고.


바래봉과 덕두산
10: 31. 옛길로 내려섰습니다.
벌목을 했군요.
우회전하여 옛길로 돌아갑니다.

서룡산 아래 범바위

금강대 오르는 갈림길을 지나고 돌아 나가니,

전에 쉼터 자리에 움막을 지었네요.

다불류시

11: 10. 백장암에 다왔습니다.

좌남우녀
연꽃벽화를 그렸습니다.

맷돌이 징검다리 용도가 되었습니다.
본래 용도로 쓰일 일이 없으니......

대웅전 앞 삼층석탑과 석등

대웅전

삼층석탑과 석등
천이백 년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탑의 기단부가 탑신에 비해 작아 좀 어색한데도,
풍부한 예술성과 독창적 상상력을 담았다고 합니다.
해서 국보 10호로.

법당에는 독경소리가 낭랑하게 들리고.....
보통 법당의 앞문으로는 출입을 금하고 옆문으로 드나드는데
VIP 신도인가?

바람이 세게 불어 하늘이 더 청명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국보와 보물을 구분하지 않는다고 합디다.
11: 17. 절을 뒤로 하고 구불 구불 내려갑니다.

벌은 겨울잠을 잡니까?
60번 지방도로 내려서 도로를 걷습니다.

삼정산이 다시 보이고,

눈 덮인 지리산 주능
하봉, 중봉, 상봉, 제석봉, 연하봉.......

12: 09. 역시 눈에 덮인 삼봉산이 보이는 매동마을 입구에 도착,
오늘의 산행을 마감합니다.

이번 주 내내 추위가 이어진답니다.
건강하십시오.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