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목: 서룡산
2, 언제: 2,026. 2. 18.(수, 흐리다가 갬)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백장암- 금강암길- 금강암- 서룡산- 삼봉산능선- 하우삼거리- 백장암(약 5.2km)
5, 소요시간: 3시간 32분
6, 시간대 별 구간
08: 17.- 백장암
08: 43.- 사거리
09: 22.- 지능선
09: 34.- 금강암(~ 09: 39.)
09: 56.- 삼봉산능선
10: 05.- 서룡산
11: 05.- 묘지 3기
11: 16.- 삼거리
11: 49.- 백장암
7, 산행소묘
설날 연휴 마지막 날 산에 듭니다.
집을 나서는데 여명이지만 쾌청이라 기분이 좋습니다.
서진주 지나면 지리산이 보이는데 상봉을 비롯해 웅석봉까지
조망이 시원합니다.

삼봉산 능선 아래에 앉은 설 뒷날의 절집은 고요합니다.
이때만 해도 하늘은 맑습니다.
08: 17. 절집 앞 작은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종무소 뒤 산신각 앞을 돌아 나갑니다.

국보10호 삼층석탑과 대웅전

몇 년 전만해도 백장암에서 출발하면 너무 싱거워
저 아래 매동마을에서 출발해 서진암 들렀다가
금강암으로 진행했는데 이젠 거리가 팍 오그라붙었습니다.

2,019년 아내와 걸은 트랙
걸은 트랙이 미국과 남아메리카 닮았는데
오늘은 남아메리카는 생략입니다. ㅎ

예전 쉼터 옆에 자리 잡은 독가 주인장의 장작 패기 솜씨와 쌓기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 양반은 공군의장대 출신인가?


작은 골짜기 사면을 감돌아 갑니다.

물길이 있어 경작 흔적들이 보입니다.

지리산 빨치산 남부유격대, 남부군입니다.

08: 43. 사거리입니다.
오른쪽으로 가면 서룡산남릉, 서진암으로 갑니다.
왼쪽 금강암길로 오릅니다.

낙엽이 수북이 쌓였지만 그래도 눈이나 얼음이 없어 미끄럽지 않아
진행이 낫습니다.
아래는 2,019년 5월에 아내와 함께한 산행기입니다.

" 서진암 북실이가 계속 따라옵니다.
가라고 소리쳐도 멀뚱멀뚱 보며 따라옵니다.
발뒷굼치에 바짝 붙어서.
하기야 말귀를 알아듣것나? 주인도 아닌데. "

위 지도 (금강암길), 금 자 아래 기역 자로 꺾이는 지점에
2,019년 5월, 2,021년 7월에 지게와 벽돌이 있었습니다.

2,019년 5월 사진

2,021년 7월사진
" 금강암을 보수하여 어느 스님이 수도정진할 거라는 얘기가 바람결에 들리더니,
벽돌을 옮기다가 그대로 두었습니다,
지게도 지게작대기도.
스님이 백장암에서 여기까지
1차로 운반했던 모양입니다.
힘에 부쳤던가? 아파 몸져 누우셨나?
계곡을 벗어나서는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갑니다.
여기 저기에 금강대 산행기가 올라오니 찾는 산꾼이 늘었는지 길이
예전보다 조금 넓어진 것 같습니다. "
위 트랙은 거의 일직선으로 찍혔는데,
금강암길 지능선 고개까지 실제 걸은 길은 술 취한 넘 갈 지자 걸음으로
진행했습니다.
계속 고도를 올리는 가파른 경사길이라.
촘촘한 등고선을 올라
09: 22. 지능선에 올랐습니다.

아!!!!
그 사이에 저 아래에 있던 벽돌을 여기까지 올렸군요.
벽돌을 하나 들어보니 돌을 깎은 거라 많이 무거운데
맨 몸으로 올라도 땀깨나 나는 가파른 길에 한 번에 몇 장이나 졌을꼬?
스님의 고행이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수도 정진이 따로 없습니다.
숨 좀 고르고,
다소 완만해진 사면길을 진행합니다.
잠시 후,

얼어붙은 샘터에 바가지가 나뒹굴고.....

양철 해우소를 지나면,

금강대가 보이고,

세간살이가 널부러진

09: 34. 고도 950에 앉은 금강암입니다.
금강경
"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유통되고 신봉되었던 대표적인 불경으로
금강반야경(金剛般若經)』『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이라고도 한다.
이 경전의 범어 원전의 사본은 티베트·중국·한국·일본에 전하고 있으며,
한역본은 402년에 요진의 구마라습이 번역한 것 외에 7종이 있다.
선종에서도 중국선종의 제5조인 홍인(弘忍) 이래 특히 중요시되었고,
제6조 혜능(慧能)은 이 경문을 듣고 발심(發心)하여 출가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삼국시대의 불교유입 초기에 전래되었으며,
고려 중기에 지눌(知訥)이 불교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법(立法)을 위해서 반드시
이 경을 읽게 한 뒤부터 널리 유통되었다.

2,019년 5월 사진
방향을 90도 틀고 규모도 줄여 이렇게 수리를 하다가 말았습니다.
비구와 보살들의 모임에서 설법주인 붓다와 질문자인 제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경전의 주제는 정신적인 깨달음은 초월적인 이성에
의존한다는 것으로, <금강경>은 정신적으로 선에 가장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산스크리트 경전이다.
예로부터 〈금강경〉을 강의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특히 선종에서 육조혜능 이후 소의경전으로 중시하고 있다.
경문의 전반부는 붓다가 근기(불교에 대한 이해 수준)가 예리한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 것이고,
후반부는 나중에 모인 근기가 둔한 사람들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한역본은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
능단금강반야바라밀경〉등이 있다.
주로 우리나라와 중국 등지에서 유통되었으나, 지금은 세계적으로 널리 읽혀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널리 읽히고 있는 이 경은 비구와 보살(붓다가 될 사람)들의 모임에서
설법주(說法主)인 붓다와 질문자인 제자 사이의 대화 형식으로 되어 있다.

2,015년에는 이랬었는데.
금강경은 실체 없는 현상세계의 성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거대한 천상의 구(球) 속에 별·어둠·빛·신기루·이슬·거품·번개·구름이 나타났다가
꿈과 같이 사라지듯이, 개체로 나타나는 모든 것은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대부분의 짧은 후기의 반야바라밀경에서와 마찬가지로 개념이 논의되거나 설명되지 않고
대담하게 서술되는데, 종종 어떤 것과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동일시하는 등 인상적인 역설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형식은 정신적인 깨달음은 초월적인 이성에 의존한다는 이 경의 주제를 강조한다."

서룡산남능에서 본 오른쪽 아래 파란 지붕의 금강암과 금강대
왼쪽 능선의 범바위
- [주유산천]님 블로그에서 빌려옴 -
나중에 금강대 뒤로 바로 치고 오를 겁니다.
현재는 수행자가 없어 보시는 바와 같이 폐사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청화 (강호성)
1924년 2월 14일, 전라남도 무안 출생 - 2003년 11월 12일 입적
학력- 메이지대학교 중퇴경력- 대한불교조계종 성륜사 조실
대한불교조계종 태안사 조실
1985 태안사 주지스님
1947 백양사 운문암 득도
" 청화스님은 24세에 출가한 이래 40여년 간 눕지 않고 좌선하는 장좌불와(長坐不臥) 수행과 오랜 동안의
묵언(默言) 수행을 한 당대의 선승으로 꼽힌다.
스님은 특히 “음식이란 사람의 신체와 정신을 유지시켜 주는 최소한의 수단일 뿐 배를 불리기 위한 게 아니다”며
하루 한끼만 식사를 하는 원칙을 지켜왔다.
1923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광주사범학교 졸업, 일본에 유학한 뒤 고향에 사학을 설립해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해방 후 좌우(左右) 대립을 보며 심적 갈등을 겪고 출가를 결심했다.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스님을 은사로 승려 생활을 시작한 그는 대흥사, 사성암, 벽송사, 백장암, 상원암,
칠장사 등 선원과 토굴에서 수행 정진했으며 60세가 넘어서야 대중 설법을 시작했다.

서룡산남릉
계율을 엄격히 지키며 염불선 수행을 해온 스님은 참선을 할 때는 심지어 석 달 열흘 동안 물만 먹고 정진하기도 했다.
스님은 늘 법문을 통해 “참선을 잘 하면 내가 없고 네가 없고 미운 사람 좋은 사람도 없어지며 나날이 좋은 날이고
때때로 좋은 때이다”라며 참선을 ‘가장 행복한 공부’라고 했다.
그는 또 불교의 어느 종파의 가르침도 버리지 않고, 다양한 교법을 서로 걸림 없이 회통하는 원통불교(圓通佛敎)를
주장했다.
한국전쟁 당시 불타버린 곡성 동리산 태안사를 1985년부터 10여년에 걸쳐 중창 복원, 구산 선문의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건했다.
1992년 말 미국에 금강선원을, 도봉산에 광륜사를 열었으며 ‘정통선의 향훈’‘원통불법의 요체’등의
저서를 남겼다.
구름이 몰려 오고 조망이 시원치 않습니다.

스님은 입적에 앞서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이 세상 저 세상/오고 감을 상관치 않으나/은혜 입은 것이 대천계만큼 큰데/은혜를 갚은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此世他世間去來不相關 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 - 인터넷 검색 -
09: 38. 바로 위 능선으로 치고 오릅니다.
2,015년 쯤에는 표지기도 없었는데 이제 몇 개가 보입니다.

짧은 거리이지만 경사가 급하고 미끄러워 스틱만으로는 힘들고
나뭇가지, 돌팍 등을 부여잡고 오릅니다.

09: 56. 삼봉산능선으로 올랐습니다.
잠시 구름이 밀려오더니 그새 상고대가 피었습니다.
고도가 1,000이 넘으니.

전번 산행 때 보았던 표지기가 이곳에도 붙었군요.
요즈음 지리산을 자주 찾는 분인가 봅니다.

10: 05. 서룡산입니다.
여기에서 투구봉이 지척이지만 되돌아섭니다.

구름이 능선을 넘나들어 범바위는 패스합니다.
이 능선 상 투구봉의 상봉 주변 조망도 좋고
범바위에서의 서북 자락 조망도 좋은데 아쉽습니다.

이 양반은 광주의 지리산꾼인데 지리산 험한 데만 골라 다니던데
우째 여기에도 다녀갔었군요.

아!!!! 형님, 천국에도 설은 있습니까?
세배를 드려야 하는데......


예전에 수청산백장봉이란 나무 팻말이 걸린 곳입니다.
팻말은 사라지고,

조망 역시 오리무중입니다.

11: 05. 세 봉분

싱석 하단에 글을 새겼는데 희미합니다.
스틱으로 낙엽을 긁어내어도.


짐승 침입 방지용인데.......
보기가 좀 거시기합니다.
그래도 후손이 잊지 않고 매 년 찾는 산소입니다.

11: 12. 하우마을로 내려가는 첫 번째 삼거리를 지나고,

잠시 진행하면,

11: 16, 두 번째 삼거리입니다.

지도를 보면 첫 번째 삼거리 바로 못 미쳐 백장암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오늘은 경사가 덜 급한 길을 가려고 조금 더 진행했습니다.
결과는,

이렇게 능선 좌우로 간벌을 한다고 막 헤집어 놓았습니다.

소나무 사이로 지나온 능선

파 뒤집어 당연히 미끄럽고 불편합니다.


날씨가 다시 개기 시작합니다.
백장선원 옆에서 바로 내려가려고 하니
흰 옷 입은 양반이 못 들어오게 하네요.

저 뒤에 서룡산남릉
승탑군과 백장암

11: 49. 출발지 도착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합니다.

19년 된 이 수건을 배낭에 매고 다닙니다. ㅎ
사람도 나이 묵고 수건도 나이 묵고......

오늘이 우수 절기입니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아름다운 계절이 옵니다.
[봄이]님이 좋아하는 봄이!
좋은 산행 많이 하십시오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