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제목: 베틀재
2,언제: 2,024. 3. 9.(토, 맑음)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사동마을- 칠성봉- 베틀재- 사동마을(약 8.4km)
5, 소요시간: 4시간 30분
6, 시간대 별 구간
08: 05.- 사동마을
08: 35.- 능선 삼거리(~ 08: 40.)
09: 40.- 칠성봉(~ 09: 54.)
10: 03.- 봉수대
11: 41.- 베틀재
12: 30.- 사동마을
7, 산행소묘
경칩이 지나니 꽃샘추위가 어김없이 찾아와 아침 기온이 영하 5도입니다.
그래도 예정했던 코스로 갑니다.
08: 05. 사동마을에서 출발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졸졸 들립니다.
나중에 내려올 논실마을에서 넘어오는 길 위 하늘이 청명합니다.
침엽수림 사이로 늦은 아침해가 떠오릅니다.
몇 번 왔지만 등로 입구 조금 위에 있어 보지 못한 석계암을 먼발치에서 일별하고 내려갑니다.
아침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손이 시립니다.
폐 경작지를 지나면,
08: 35. 칠성봉북릉 삼거리에 닿습니다.
무슨 제비꽃 잎인가?
봄기운에 잎이 나왔다 한 이틀 영하의 기온에 얼었습니다.
앞은 베틀재에서 올라오는 구재봉능선 길, 얼마 전 새로 닦은 임도가 산허리를 가로지릅니다.
뒤는 삼신봉에서 내려오는 남부능선, 가운데 잘록한 원강재 너머 조금 보이는 반야봉
이 북릉길은 3년 전만해도 표지기 하나 없었는데 산꾼들 발길이 닿기 시작했습니다.
신선대 구름다리, 철쭉제단, 형제봉......
09: 44. 다시 칠성봉에 섰습니다.
2주 전에는 눈꽃 만발이었는데 봄기운에 벌써 다 녹아 없어졌습니다.
지도에는 905.8m로 표기되었습니다.
높은 지리 주능선에는 아직 눈이 많습니다.
왼쪽부터 영신봉, 촛대봉, 연하봉, 잘록한 장터목, 제석봉, 상봉, 중봉, 그리고 써레봉
남쪽의 조망을 보기 위해 정상 아래로 조금 내려갑니다.
지난 주 올랐던 구재봉과 오른쪽 억불봉
악양들과 섬진강 건너 백운산 연봉이 흐릅니다.
아래 삼화저수지, 멀리 왼쪽 금오산
더 왼쪽으로 눈을 돌리면 멀리 금오산 옆으로 남해가 보입니다.
왼쪽 와룡산
09: 54. 구재봉능선길로 내려갑니다.
‘베틀’은 우리나라에서 명주, 삼베, 무명, 모시 등 전통 직물을 짜는 데 사용해 온 직기를 말한다.
베틀의 어원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우리나라에서 ‘베’가 ‘포布’, 즉 ‘직물織物’이라는
포괄적 의미로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베틀’은 ‘포기布機’ 또는 ‘직기織機’를 의미한다고 본다.
베틀의 기본 형태는 직기 틀[機臺]을 갖춘 요기腰機, body-tension loom로 분류할 수 있으며,
요기라는 직기 명은 명대明代의 기술서 『천공개물天工開物』에 처음 보인다.
요기란 직물을 감는 축인 말코를 직기에 고정하지 않고 부테와 연결하여 직조자의 허리에 감고
앞뒤로 당기며 경사의 장력을 유지하는 직기이다.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전공지展功志 권5에는
“우리나라 민간에서는 요기만을 사용하며 발 하나를 앞뒤로 당기는 모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산 김준근이 그린 〈요대 치는 모양〉이나 〈관 짜는 모양〉에서는
기대機臺 없이 직조자가 바닥에 앉아서 요대를 허리에 감고 제직하는, 지극히 간단한 구조의 원시적인 요기가 묘사되어 있다.
기대를 갖춘 베틀식 요기는 원시 요기에서 한 단계 발전된 형태이며,
직조자가 베틀 위에 앉아서 직조하게 되며 종광을 손 대신 발로 들어 올리게 됨으로써
손 동작이 자유로워지면서 생산성이 향상된다.
한반도에서 베틀이 사용된 시기는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목재로 만들어진 베틀은 쉽게 부식되기 때문에
유물로 발굴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베틀 그림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처음 확인된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 마셴구 1호묘와 평안남도 용강군 대안리 제1호묘의 남벽에서도 직기 그림이 확인되나
박락이 심하여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다. 현재와 같은 베틀 모습은 조선시대 풍속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18세기 말 김홍도의 풍속화에 묘사된 베틀은 현재의 베틀과 유사하나 직기의 기대가 경사지지 않고 거의 수평으로 표현되었다.
19세기 말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의 베틀은 세부적인 구조까지 정밀하게 묘사되었으며, 기대가 경사져 있다.
회화자료에 묘사된 베틀은 대부분 잉아가 하나인 단종광의 베틀이나 기산 풍속화 중
〈항나 짜는 모양〉이라는 표제의 그림에서 잉아와 용두머리, 끌신이 두 개씩인 베틀이 한 점 확인된다.
민간에서 베틀로 평조직 외에도 사조직 등 다양한 직물이 제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 이하 베틀에 관한 글은 [한국민속대백과] -
10: 02. 봉수대를 지납니다.
노송은 뒤틀려도 꿋꿋하게 서 있습니다.
가운데 거사봉에서 내려오는 구재봉능선.
푹 꺼진 회남재, 맨 오른쪽은 깃대봉
뒤는 지리산 주능선. 왼쪽 명선봉부터 벽소령, 덕평봉, 칠선봉, 영신봉.....
멀리 반야봉, 화개재, 토끼봉
써레봉에서 황금능선이 내려오고 오른쪽 끝에 구곡산
멀리 웅석봉과 달뜨기능선, 왼쪽 구곡산, 오른쪽 나뭇가지 뒤로 주산
오전엔 차가운 날씨지만 조망은 참 좋습니다.
봄기운에 이끼가 힘을 냅니다.
산불에 타 죽은 소나무는 풍상에 거의 다 삭았습니다.
가운데 형제봉과 오른쪽 활공장
베틀 구조는 기본골격인 기대와 잉아를 들어 올리는 전동도구傳動道具, 날실에 부속되는 부품, 씨실을 짜는 도구, 그 외 부속품으로 구성된다.
베틀은 분해와 조립이 가능하여 베를 짜지 않을 때는 해체하고, 비를 맞지 않도록 광이나 방에 보관한다.
베를 짤 때는 기대를 설치하여 조립하고 직조를 준비한다. 이를 ‘베틀 차린다’ 또는 ‘베틀 놓는다’라고 한다.
베틀의 기본골격은 앞다리, 뒷다리, 누운다리, 가로대로 이루어진다.
앞다리와 뒷다리는 누운다리에 고정되어 있으며, 가운데에 가로대가 끼워지고 양쪽에 다리가 세워진다.
앞다리는 뒷다리보다 길어서 기대가 뒤는 올라가고 앞은 내려가는 식으로 경사져 있다.
지역에 따라 앞다리와 뒷다리를 서로 반대로 지칭하기도 한다.
직기의 크기는 지역마다 다르지만 대략 길이가 2m, 폭이 70㎝이고 높이는 가장 높은 곳이 110㎝ 정도이다.
또한 기대의 경사진 각도는 20° 정도이다. 기대의 경사도는 지역적으로 조금씩 다르며,
특히 강원도와 이북 쪽의 베틀은 기대의 경사도가 아주 가파르다.
직물을 짤 때 베틀 기대의 경사도가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으나 바디치기를 할 때는 경사도가 가파를수록 힘이 많이 가해진다.
베틀이 차려지면 베매기가 끝난 도투마리를 앞다리 뒤쪽 누운다리 위에 올리고,
사침대와 바디가 끼워져 있는 날실 부분은 직기 앞쪽으로 잡아당겨 놓는다.
이때 도투마리는 특별히 고정되지 않고 누운다리 위에 얹혀 있다.
도투마리는 날실을 감는 경권구經捲具에 해당히는데 통나무를 깎아서 만들며,
가로로 긴 H자형의 나무틀로 가운데 부분에 날실을 감게 된다.
베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잉아를 들어 올리는 용두머리 장치이다.
용두머리는 앞다리 위에 올려져 회전한다. 용두머리 앞에는 양쪽에 눈썹대가 끼워져 있고,
눈썹대에는 눈썹끈이 달려서 잉아와 연결된다.
용두머리 뒤쪽으로는 중간에 신나무를 끼우고, 신나무 아래쪽은 쇠꼬리로 연결하여 끝에 끌신을 단다.
끌신을 끌면 용두머리가 돌아가면서 눈썹대에 연결된 잉아가 들어 올려지는 구조이다.
11: 41. 베틀재로 내려섰습니다.
직진하면 깃대봉으로 오르고, 좌회전하면 악양면 상중대, 우회전하면 청암면 논실로 갑니다.
당연히 우회전하여 내려갑니다.
우리나라 베틀의 잉아는 실로 만드는 반종의 형태로 1개가 설치된다.
잉아는 베를 짤 때마다 매번 새롭게 만들어서 사용한다.
잉아만들기는 사침대로 나누어져 있는 사올과 잉아올 중 아래에 있는 잉아올을 골라 차례로 잉앗실을 거는 작업이다.
잉앗실을 잉아올 한 올에 걸고 8자형 고리를 만들어서 위의 잉앗대에 건다.
같은 방법으로 잉아올을 다 걸 때까지 반복한다.
잉아걸기가 끝나면 아래의 잉앗대를 위의 잉앗대 쪽으로 밀어 올려 함께 눈썹끈에 묶어 매단다.
잉아 아래에는 잉앗대와 똑같이 생긴 속대를 끼운다.
베틀가에 ‘잉앗대는 삼형제’라는 말이 있듯이 잉아에 가로로 3개의 대가 끼워져야 비로소 잉아만들기가 끝난다.
잉아 작업이 완료되면 잉아올과 사올 사이를 벌리고 사이에 삼각 구조의 비거미를 끼워 준다.
사올이 비거미 위쪽으로 가고 잉아올이 아래쪽에 놓인다.
애써 만들어 놓은 임도는 정작 막아버렸습니다.
베틀의 개구운동은 비거미를 끼워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연개구 한 번과 끌신을 작업자 쪽으로 잡아당겨서
잉아를 들어 올려 만들어진 역개구 한 번이 반복되는 형식이다.
자연개구와 역개구로 만들어진 공간에 북을 투입한 후 바디로 치며 베를 짠다.
바디는 짜고자 하는 날실의 샛수에 맞추어 준비한다.
날실의 올 수와 바디 구멍이 딱 맞아야 폭과 샛수에 맞게 직물을 짤 수 있다.
따라서 예전에는 집집마다 여러 가지 샛수의 바디를 갖추어 두고 베를 짤 때마다 골라서 썼다.
바디는 바디집에 넣어 바디비녀로 고정한다.
직물을 말아 감는 포권구布捲具는 말코라고 하며, 말코의 양쪽 마구리에 부테끈으로 연결하여 베를 짤 때 허리에 감고
날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서 장력을 조절한다.
북은 씨실을 북길 사이에 집어넣는 도구로, 밑이 둥글고 위가 평평하며 양 끝이 유선형으로 깎여 배 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에는 홈이 파여 있고, 홈의 한쪽에는 실을 밖으로 빼낼 수 있는 구멍이 있다.
베틀재 바로 아래 습지
최활은 베를 짤 때 폭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직물 폭의 양 끝에 끼우는 지지대이다.
대나무를 휘어서 만들며, 양 끝에 뾰족한 쇠가 끼워져 있어 이 쇠끝이 직물의 식서 부분에 끼워지게 된다.
베틀은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부속품까지 총 40여 종의 도구와 부품으로 구성된다.
이 가운데 대부분은 집에서 직접 만들어 썼으나 바디와 바디집만은 전문 장인이 만든 것을 구입하여 사용하였다.
우리나라 베틀이 다른 지역의 요기와 구분되는 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가장 큰 특징은 잉아를 들어 올리는 방법으로, 끈을 발로 잡아당겨 끈과 연결된 용두머리가 돌아가고
눈썹노리가 올라가며 동시에 잉아가 들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분경봉(비거미)이 직기에 고정되지 않고 단독으로 끼웠다 뺐다 할 수 있으며,
고정된 곳이 없어 직물을 짤 때 떠서 움직이는 부동형浮動形이라는 점이다.
이 같은 유형의 베틀은 한반도와 중국 남부 먀오족苗族 지역, 한반도와 근접한 일본의 해안지역에서 사용되고 있다.
근대 이후 생산성이 향상된 개량베틀이 널리 보급되고 전통직물 제직이 감소함에 따라 점차 전통베틀의 사용이 줄어들면서
이를 제작하는 장인도 사라지게 되었다. 충청남도에서는 베틀 제작 기술의 전승을 위해
2016년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52호 ‘서천 베틀장’을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때 서천군 화양면에서 거주하며 평생을 소목일에 종사하던 윤주열이 보유자로 인정되어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베틀
베틀 구조와 명칭
길쌈
길쌈이란 옛날에 누에고치·삼·모시·목화 등의 섬유를 가공하여 명주·삼베·모시·무명 등의 피륙을 짜던 일을 말한다.
동예·마한 등에서 시작된 길쌈은 삼국시대 때 기술이 크게 향상되었다.
특히 신라 때에는 해마다 7월 15일부터 8월 15일 한가위 때까지 두 편으로 갈린 부녀자들이 길쌈내기를 하였다고 한다.
무명길쌈은 고려 말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온 이후부터 시작되었으며,
삼베나 명주·모시보다 짜기 쉽고 옷감도 튼튼하여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부녀자들은 길쌈을 할 때 베틀가·물레노래·상사기노래 등 길쌈노래를 불러 자신의 속마음을 표현하였다.
봄이 오는 길목인데....
3년 전보다 일러 봄꽃은 아직 안 피었습니다.
봄이 더디 오는 산골이지만 마늘이 많이 자랐습니다.
두릅도 새순을 밀어 올릴 준비를 합니다.
파종을 할 밭에 먼저 퇴비를 뿌리죠.
동네 이름이 답곡, 논실인데......
논을 노은으로 풀었을까?
매화도 늦네요.
고갯마루에 서어나무와 소나무가 나란히 섰습니다.
증 절충장군 경주 김공 휘 경진 지묘
정부인 광산 김씨 쌍분
절충장군은 조선시대 서반(무관) 정3품 당상관의 품계입니다.
아마 사후에 추증된 모양입니다.
아침에 오른 칠성봉이 다시 보이고....
긴 밭에 무엇을 심었는지 등 굽은 할머니가 덮은 천을 날리지 않게 일일이 돌로 고정합니다.
천은 수분 증발을 막고 보온도 하겠지요.
12: 30. 출발했던 사동마을 도착으로 오늘의 산행을 마감합니다.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참,
지리99 회원이 아닌 제 지인들은 다음 티스토리에서 글을 보기 때문에
산행기의 음악을 듣지 못합니다.
해서 장사익의 절창 [꽃구경]을 가사나마 올려드립니다.
꽃구경
작사 김형영 작곡. 노래 장사익
해설
삶과 죽음을 분리하여 보지 않는 장사익의 관조적 태도는 이번 6집 음반의 타이틀 곡 ’꽃구경’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새 음반 타이틀 곡인 ’꽃구경’은 "꽃구경을 가자"는 아들을 따라 산에 오르던 어머니가 문득 고려장 임을 깨닫고
홀로 돌아갈 아들을 위해 솔잎을 뿌려 길을 표시한다는 내용이다.
무반주로 진행되는 가운데 흐느끼는 듯한 가사가 도드라지며 마음을 긁는다.
많은 이들이 장사익의 노래를 통해 위안을 느끼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가 누구보다도 많이 아파 본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흔다섯에 데뷔한 늦깎이 가수의 신산한 삶이 녹아있는 그의 노래에서 우리들 삶의 희노애락을 발견하고
우리 자신의 얼굴과 닮은꼴을 찾을 수 있다. 우리의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고,
쉰아홉 해 그의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더불어 사는 이들이 모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이 담긴
장사익의 노래는 우리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위한 뜨거운 응원가이다.
참고로 장사익 선생은 제보다 한 살 위인 1,949년생 충남 홍천 출신 가수입니다.
1,994년 [하늘 가는 길]로 데뷔했습니다.
데뷔한 계기가 꽤나 드라마틱한데, 40대가 되도록 직장을 15군데 전전하다가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임동창(林東昌)의 권유로 데뷔를 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그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가창력과 현 대중가요판에 유일하게 활동하는 순수 국악계통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
이제 본격적인 봄입니다.
좋은 산행 많이 하십시오.
琴 農 姜 鎬 元 拜 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