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리99가족 중에 부부 산꾼이 꽤 많습니다. <산부엉이>, <천년소옹>, <지리산총무>, <산죽>, <장당골백곰>, <미수타>, <유님>, <강진>...... 다 외우지 못해 죄송합니다.
최근에는 자녀와 함께 가족산행을 하신 분들의 산행기도 심심찮게 올라와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고 있습니다. <와운>님, <유님>, <미수타>님 등입니다.
저도 집사람과 가끔 산행을 합니다만 머리 커진 애들과 같이 산에 갈 기회가 좀처럼 없던 차에 달포 전에 작은 넘이 불쑥 “아버지와 같이 산에 한 번 갈까요?” 하기에 그래라 했습니다. 속으로는 엄청시리 대견했습니다. 기쁨이야 당연하지요.
저는 재주가 모자라 세 살 터울로 아들만 둘입니다. 큰 애는 평소 운동을 잘 하지 않아 걱정을 했었는데 하루 전에 일이 생겨 빠지고 셋만의 산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족 산행이 얼마만이냐고 물어보니, 초등학교 4학년 때 가야산, 고등학교 1년 때 덕두산- 바래봉, 성삼재- 노루목, 그리고 이번이 네 번째랍니다. 그러니까 7년 만의 산행인 셈입니다.
두 아들(93년도 가야산. 초등4, 중학교1년임) 사진을 다시 찍었습니다.
코스를 어디로 잡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한참 한 결과, 아비가 좋아하는 지리산 가는 것은 당연한 줄 알거고, 비지정은 좀 거시기하고, 해서 이왕 가는 것 천왕봉으로 정하니까 집사람도 좋아했습니다. 집사람은 천왕봉이 네 번째고, 둘째 넘은 당연히 처음입니다. 저야 1,970년도 지리 초등을 종주로 시작해서 이십 몇 년간을 쉬다가 94년도부터 다시 지리를 찾기 시작하여 상봉을 꽤 많이 올랐습니다.
지리 골골 능선마다 어제 갔던 길이 오늘 가도 느낌이 다르니 같은 코스라고 꺼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갈 때마다 마음이 설레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새벽 5시 50분에 집을 나서 중산리 매표소에서 출발을 하니, 07: 25.입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등산객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가물어 등로는 먼지가 풀풀 날립니다. 내일 오후부터 전국적으로 비 온다는데 해갈이나 될라나 모르겠습니다.
07: 56. 칼바위 지나고 출렁다리 건너, 삼거리에서 잠시 쉽니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이고, 여기서부터 망바위까지 첫 번째 오르막인데 한 30분 힘들다고 알려줍니다.
마의 첫 고비를 아들은 잘 따라 옵니다. 제 엄마는 조금씩 뒤처집니다. 쉬지 않고 30분 오르니 08: 30. 망바위 도착합니다. 한 10분 쯤 늦을 거라 예상했던 사람이 5분후에 닿습니다.
조금 수월한 길을 20여 분 진행하여 전망이 툭 트이는 헬기장에 올라섰습니다. 단풍에 물든 산자락의 법게사가 코앞이고 그 뒤로 천왕봉이 우뚝 섰습니다. 구름이 쉴 새 없이 몰려왔다가 또 흩어집니다. 사진 한 방 박고 로타리산장 지나 샘터에서 물을 보충합니다. 매표소에서는 위쪽에 물을 구할 데가 없다고 미리 준비하라더니, 적지만 샘에 물이 고여 있습니다. 가뭄이 오랜 기간 계속되어 지리산에도 물이 귀합니다.
09: 06. 법계사 입구를 지납니다. 올라온 아래쪽 조망이 트이질 않아 갑갑합니다.
운무에 가린 상봉.
바람이 불진 않지만 기온이 낮아 산행하기 딱 좋습니다. 아이도 실내에서 러닝머신만 뛰다가 맑은 공기 마시고 산에 오르니 기분이 상쾌하다고 좋아합니다.
구름 때문에 조망이 없어 앞만 보고 갑니다. 09: 50. 개선문 지나고, 급경사 한 번 더 오르고 옆으로 조금 나아가니, 10: 17. 천왕샘입니다. 장마 때나 비가 많이 왔을 때에 샘터 역할을 하는 곳이라 물 없는 것은 당연지산데, 전에 없던 표지판이 떠억하니 서 있습니다. 천왕샘이 남강의 발원지랍니다. 작년 시월에 세웠군요. 이 코스로 오르기는 일 년이 넘었다는 얘깁니다.
법계사 지나고부터 아이가 앞에 서더니 잘 따라 오는가 가끔 뒤돌아보며 잘도 올라갑니다. 참, 많이 컸습니다.
작년에 제대하고 일 년 동안 LPG충전소에서 일한 돈으로 제 아비, 산에서 유용하게 사용하라고 고도계시계 사 주더니, 지난 여름방학 때는 쉬지도 않고 학비 마련한다고 그 뜨거운 뙤약볕에 두 달 동안 <노가다>해서 등산화를 사 주더군요. 필요 없다고 사양했지만. 물론 십일조도 내고 어릴 때 키워주신 할머니께 용돈도 드렸습니다. 사실 눈물이 납디다. 제대 후에 아이 보고 “아비가 얼마 있지 않아 직장 그만두게 되어 공부 끝까지 못 시켜준다”고 했더니 “알고 있습니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더군요.
마지막 깔딱 고개를 힘 모아 오르니, 10: 30. 드디어 상봉에 섰습니다. 보통 때보다 조금 더 걸렸습니다.
구름 몰려드는 중봉.
천왕봉엔 항상 산객이 많습니다. 처음으로 아이와 오른 터이라 증명사진도 박습니다. 구름이 능선을 기준으로 몰려왔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합니다. 잠시 쉬었다가 장터목으로 진행합니다.
천왕봉을 배경으로.
오름길에서는 사진을 몇 장 안 찍었는데 이제부터는 걸음이 자꾸 뒤처집니다. 내림길이라 무릎도 아프고 사진 때문에 꾸물거리고....
장터목 가는 길.
쉬엄쉬엄 갑니다. 동양화 같은 환상적인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제석봉.
11: 34. 장터목입니다. 그야말로 장터같이 북적댑니다. 야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라면 끓이는데 집사람이 무엇을 내어놓는데 족발입니다. 엥??? 웬 족발? 하니까 아들 둘 온다고 준비했는데 큰 아이 같이 못 온 게 마음에 걸린다고 하루 종일 궁시렁댑니다. 이왕 못 온 거 그러면 어쩌겠냐? 다음에 같이 오면 되지 뭐. 하고 달랩니다. 어제부터 또 손목이 안 좋아 아예 술을 안 가지고 왔는데 안주만 먹기가 참 그렇네요. 아이는 잘도 먹습니다.
12: 20. 일어섭니다. 샘에는 물이 졸졸 나와 줄을 서 기다립니다. 500ml 받기도 한참 걸리겠습니다.
오를 때와는 완전히 전세 역전입니다. 집사람과 아이는 죽이 맞아 내달리고 저는 한 손 지팡이로만 천천히 내려갑니다.
단풍.
13: 18. 유암폭포 지나고 내려갈수록 단풍이 장관입니다. 본래 이 법천계곡(?)이 단풍이 좋습니다. 다만 올해 가물어 빛깔이 별로 안 좋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상상외입니다.
유암폭포.(실폭포 수준이...)
구름이 끼어 광량이 부족한데도 아름답습니다. 햇볕이 났더라면 참 좋을 뻔 했습니다. 수량이 줄어 계곡의 위용은 감했지만, 그래도 물소리 듣고 가는 내림길이 정겹습니다.
99년 뱀사골(고딩1, 대1. 역시 사진을 찍음).
모자간 둘이서 앞에 가다가 기다려 주고.... 또 가다가 기다리고... 몇 번 하니, 아침에 쉬었던 삼거리 나오고, 15: 00. 매표소 도착합니다.
단체사진.
아이는 본격적인 지리산행이 처음이지만, 수월한 모양입니다. 오를 때 네 번 쉬었는데 두 번 쉬면 맞겠답니다. 허허 고놈 참. 쓰고 보니 팔불출 딱 되었습니다. 옛말에 농사와 자식은 지 농사, 지 자식이 예쁘고, 마누라는 남의 마누라가 좋아 보인답니다.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코스를 어디로 잡을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한참 한 결과, 아비가 좋아하는 지리산은 가는 것은 당연한줄 알거고, 비지정은 좀 거시기하고..... 어쩜 호원형님하고 저하고 통하는게 있는가 봅니다. 사실이지 저는 내려설까 말까..? 하는 고민 고민.. " 그래 이런 샛길 아이에게 가르쳐서 ...냉중에 지 좋으면... " 그래도 하고 나니께 정말 좋았습니다.강호원형님의 넉넉한 웃음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 사진의 그 웃음처럼,,,,,,,,
자식에 대한 대견한 모습이 마지막 사진에 절절합니다. 엄마는 아주 죽고 못사시네요!!! 부럽습니다. 제 아들은 세석비박 후 빼빼한 넘을 좀 안멕이고 내립다 뺏더니 탈진 한 번 한후론 울면서 절대 산에 안간다고 하더니 지금도 절래절래하면서 기운을 빼 놓습니다. 언제나 같이 갈 수 있으려나 생각하곤 하는데 부러운 산행기 접하고 한 글 놓고 갑니다.
회장님,가족간의 동반산행 너무 부럽습니다. 저희 애들은 중고때 몇 번 동행하고는 머리가 크진 이후로는 설설 피하더군요. 회장님, 이 산행기 적절한 시기에 잘 올렸습니다. 그러찮아도 등산화 살 때도 다 되었고,또 고도계도 조금 좋은 넘으로 한번 바꿔 볼까 생각중이었는데 소원성취하지 않나 싶습니다. 지금 당장 저희 딸아이와 아들놈에게 전화해서 이 글을 보라고 해야 겠습니다. 사 준다고 하면 한번쯤은 회장님처럼 사양을 해야만 애비의 도리일까요? 그리고 회장님 장남과 저희 딸아이(28세)와 연령이 비슷하지 싶은데 사돈관계를 한번 장고해 보심이...
강호원형님~! 자식자랑이 쪼메 심하십니다~ㅎ 제대 후에 아이 보고 “아비가 얼마 있지 않아 직장 그만두게 되어 공부 끝까지 못 시켜준다”고 했더니 “알고 있습니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하더군요 ------------------------------------------ 이대목에 부자지간의 정과 아드님의 깊은 마음이 훤한 미남의 얼굴과 함께 참 반듯한 청년이라 저의 집 딸래미랑 몇살 차이가 날까 생각 함 해 봤심다~ㅎ
지리99 사교계에 아드님을 데뷔시키는 진정한 속내는? 아직 장가들이시기엔 이른 나이로 알고 있는뎁쇼. 따님 가지신 지리99님들 흡족한 사윗감 등장에 컴퓨터 모니터에 구멍 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면서 저도 제 딸을 떠 올려 보니 이런... 너무 멉니다. ㅎㅎㅎ 큰 아드님은 아버님 닮으셨고 막내는 어머님 닮아서 두 아드님 모두 호남이십니다. 직장을 그만두는 내년 생각에 이 가을이 스산할까 싶었는데 위 산행기를 보니 웬걸요.강호원님은 좌우 사방으로 참 따땃하신 분입니다.
저도 며칠전 팔불출 산행기를 올렸기에 그 심정 이해하고 남습니다 요즘 가족들을 보면 아이들이 아빠 엄마보다 머리 한개씩은 더 있죠 저희 어렸을때도 그랬지만 과연 이러한 추세가 어느 세대까지 이어질지요 아마도 저희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까 싶네요 오로지 자식들을 위한 삶이 체력부국을 만들어 놓았죠 키는 아이들 부모의 마음은 더 없이 행복하고.. 다방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휼륭한 아드님과 함께한 지리천왕 정복기 두고두고강호원선배님의 가슴을 뜨겁고 꽉찬 기쁨으로 남아 있을것 같습니다 선배님 부럽습니다.
코 끝이 찡하게 부러움으로 다가오는 감명깊은 산행기 잘 봤습니다. 햄님요. 아드님도 햄님을 닮아 무척 마음이 여리게 생겼습니다. 어느덧 불쑥 커 버린 아들녀석이 그렇게 마음을 먹고 있다는게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밥 먹지 않으셔도 배 부르겠습니다. 그래서 항상 싱글벙글이 십니까. 항상 가족들 모두가 건강하시고 그 행복 영원히 이어 가시길 빕니다.
아들과 함께한 산행에 이렇게 많은 성원과 격려의 말씀 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우리 애들은 어릴 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95년까지 집사람이 직장생활을 했기에 더 그랬습니다. 꼭 8년 전 시월, 작은 애가 중3일 때 할아버지가 별세하셨을 때 저보다 손자가 더 많이 울었습니다. 병원에서 석 달 열흘, 집에서 석 달을 누워 계셨는데 대소변, 목욕등 병 수발을 애들도 같이 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붓글씨를 잠시 배웠었는데, 서투른 솜씨지만 할아버지의 을 작은 애가 썼습니다. 제가 시켰지요. 미끄러운 비단에 처음 쓰는 거라 긴장도 많이 했지만 한 자 한자 정성들여 할아버지의 사랑을 되새기며 엄숙하게 쓰더군요.. 라고..... 여러분의 애정어린 관심과 격려의 말씀이 우리 애가 커가는데 큰 힘이 되리라 믿습니다. 님 말씀대로 저도 아버지가 생각나는 시월입니다. 그리운 아버지...... 지리99가족 여러분, 사랑합니다. 복된 날들 되십시오. 지금도 한 두 달만에 집에 오면 할머니방에서 조손간에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이 번 에 올린 글을 며느리가 읽어 드리니까 많이 흐뭇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