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실상사

금농 2024. 8. 19. 20:22

1, 제목: 실상사

2, 언제: 2,024. 8. 17.(토, 맑고 무더움)

3, 누구와: 혼자서

4, 코스: 실상사- 약수암- 도마마을- 당흥(약 7.3km)

5, 소요시간: 3시간 36분)

6, 시간대별 구간

  07: 49.- 실상사(~ 08: 37.)

  09: 32.- 약수암(~ 09: 40.)

  10: 25.- 도마마을(~ 10: 32.)

  11: 25.- 당흥(마천 정류소)

7, 산행소묘

 

모기 턱이 떨어진다는 처서가 코 앞인데 전국적으로 연일 기록을 경신하는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폭염 경보가 내리면 노약자는 바깥 출입을 삼가라고 하지요.

 

칠 월 둘째 주 도솔암 산행을 한 이후 이런 모임, 저런 사정도 있었지만.

기상청이나 행안부에서 권하는 대로 더워서 두 주는 그냥 쉬었습니다.

 

2~3 년 전만 해도 산행을 한 주만 쉬어도 좀이 쑤셨는데......

세월에 이기는 壯士(장사) 없다고 나이 묵으니 얼굴에 느는 주름과는 반비례로

중력을 거스르는 힘도 약해져 갑니다.

 

해서 오늘은 오랜만에 지리산 냄새나마 맡아보려고

삼정산 자락의 寺庵(사암) 순례길에 나섭니다.

 



07: 49. 실상사 앞 연밭입니다.

 

왼쪽 서룡산에서 삼봉산으로 삼봉산능선이 이어집니다.

오른쪽 백운산

 



옛날에는 팔 월에 연꽃이 절정이었는데 칠 월에 한창이다가

이제 끝물이네요.

 

지구가 자꾸 뜨거워지니 명태는 오래전에 우리 동해에서 러시아로 올라갔고,

홍어는 군산 앞 바다, 방어도 삼척까지 진출했답니다,

육상 작물도 마찬가지로 계속 북상 중이고.

 

바야흐로 한반도는 아열대기후로 접어들었습니다.

 



천왕문

세로 글씨는 가득함도 빛나고, 비움도 빛나라.....

 



옛 실상사 기와탑

 



3년 전에 실상사 문화재를 소개하였지만,

이 한여름에 다시 복습하는 의미로 예쁘게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동.서 삼층석탑과 석등, 보광전


아침 볕도 뜨거운데 노 처사님이 절 마당을 손질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진 찍는다고 한 십여 분 어정거리니 금세 등골에 땀 흐르는 소리가 시냇물 소리 같습니다. ㅎ

 



목탑지

 





솟대

 





실상사에는  특이하게 흰배롱나무가 있습니다.

 



약사전

 


철조여래좌상

 





동 삼층석탑

 


동서 삼층석탑


보광전 앞마당에 있는 높이 3.2m의 쌍탑이다. 증각대사 홍척이 실상산문을 창건할 때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실상사의 삼층석탑은 상륜부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탑으로 유명하다. 

이곳 실상사 외에는 문경 봉암사 삼층석탑 등이 전부다. 

동탑은 노반(露盤) - 복발(覆鉢) - 앙화(仰花) - 보륜(寶輪) - 보개(寶蓋) - 수연(水烟) - 용차(龍車) - 보주(寶珠) 이 모두가 남아 있으며, 

서탑 역시 수연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아 있다.

불국사 삼층석탑의 상륜부를 복원할 때 이 삼층석탑을 참고했다. 

다만, 상륜부가 다소 화려한 감이 없지 않아 석가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낙수면의 경사가 상당히 세어 다소 불안정해 보인다.

 





서 삼층석탑

 



석등

 





실상사에는 보물이 지천입니다.

워낙 오래된  통일신라 시대의 고찰이라 말큼 보물입니다.

 



老松(노송)과 風磬(풍경)

 



실상사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지장대사의 제자인 증각대사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그의 고향이었던 지금의 자리에 실상사를 건립했다. 

증각은 선종의 승려로, 그가 세운 아홉개의 절인 구산선종(九山禪宗)의 첫 번째가 이 실상사다.

흥덕왕은 이 절을 세울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줬고 왕은 태자인 선광(宣光)과 함께 이 절에 귀의했다. 

이 때문인지 증각은 선종의 유행을 일으켰고, 실상사도 계속 번창했다. 이후 통일신라 시기에 쌍탑식의 가람을 받아들여 두 개의 석탑을 세우게 된다.

조선시대 이후로는 수난이 끊이질 않는데, 세조 때 1468년에 원인모를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설과 그 뒤 정유재란때 왜구에 의해 전소되었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숙종 5년(1680)까지 실상사의 승려들은 실상사 안의 백장암이란 작은 전각에서 생활해야 했고, 

실상사 터에는 철불, 석탑, 석등 등만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숙종 때 왕에게 승려들이 상소문을 올려 36채의 건물을 중건하였고, 이후 순조 21년(1821)에 다시 중건을 하게 된다.

그러나 고종 19년(1882) 근처 유생들이 숭유억불과 절터를 가로챌 목적으로 방화를 해서 또 홀라당 타버리고, 

결국 고종 21년(1884)에 조촐하게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조선시대에 이런 유생들의  방화는 그리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회암사 참고.

 

(이하 문화재 해설은 나무위키에서 따옴)

 



보광전

 

화엄경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지상과 천상을 오르내리며 구법순례(求法巡禮)를 하는 칠처구회(七處九會 

2, 7, 8회의 설법이 보광명전(普光明殿)에서 행해진다고 묘사되어 있다

상주 남장사(南長寺보광전과 같이 원래 비로자나불이 주존으로 되어야 하나 조선시대 화엄종의 퇴조와 함께 석가불 혹은 아미타불을 봉안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따라서 명칭만 다를 뿐 대적광전대웅전극락전과 같은 성격의 전각으로 보아도 무방하다고 하겠다.

[출처] 사찰 주요 전각의 의미|작성자 한원

 

 

서룡산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당시에는 대한민국 국군과 공비들이 번갈아가며 점령하였지만, 다행히 월정사처럼 불타지는 않았다.
현재의 실상사는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에 주력하고 있다. 

실상사를 중심으로 인드라망공동체를 만들어 대안학교(작은학교), 귀농자 마을 형성에 기여하고 있다.

 

 

 

백일홍나무- 배기롱나무- 기 자 탈락- 배롱나무

 


증각대사탑

 

실상산문의 창건주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洪陟)의 유골을 모신 승탑이다. 극락전의 왼쪽에 위치한다. 

극락전 옆 문으로 들어가면 승탑이 있다.

팔각원당형으로, 상대석과 하대석에는 연꽃을 새겼으며, 중대석에는 안상을 새겼고 그 안에는 비천상을 새겼다. 

탑신과 상대석 사이에는 난간을 새긴 석재가 끼여 있다. 탑신에는 문비와 사천왕을 새겼다.
탑신와 옥개석에는 목조건물과 같이 가구를 조각한 점이 눈에 띈다. 

주두, 평방, 창방, 화반 등이 조각되었으며, 서까래와 기왓골도 새겼다.
상륜부는 앙화와 보륜, 보주가 남아 있다.

 

 

아래는  2,021년 8월 사진입니다.

 

 

 

증각대사탑 위에 달이 떴습니다.

 

 

옥개석의 비천상

 





아래는 2,021년 답사 후기의 꼭대 지종석 선생의 댓글입니다.

 

꼭대  2021.08.30 19:56  

우리 문화재를 보겠다고 유료 답사팀에 참가하여 먼길을 떠나기도 하고,
세계적인 문화재를 보겠다고 큰 돈 들여 해외여행도 가곤 합니다만.

석조문화재에 관한 한 우리의 통일신라 문화재가 중국과 일본을 압도할 뿐 아니라
르네상스 이태리에 비교해도 월등합니다.

통일신라 문화재의 정수가 지리산 자락에 늘려 있는데,
곁눈 조차 주지도 않고 산으로 올라가기 바쁩니다. 지리산이 무엇을 품고 있는 산인지도 모른 체.....

일단 지리산 자락 문화재에 부지런히 다니시는 <금농>님이신지라
기왕 가서 보시는 김에 지리산 자락 문화재 가치의 본질은 무엇인지, 왜 세계적인지,
어떻게 보아야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지 보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옥개석 비천상의 머리는 향 좌측에 있습니다.
옥개석 비천상을 보셨으니, 이제 남은 문제는 왜 옥개석 처마 협소한 공간에 비천상을 조각해 놓았는지 생각해보시면, 
승탑의 의미를 깨닫게 되실겁니다.

몇시에 가셨습니까?
하필 그 시각에 구름이 가려 조금 아쉽네요.
제가 시간 맞추어 함 가보겠습니다. 햇빛이 나무와 지붕 사이의 공간으로 들어오는 기찬 계절인데요, 
와 비천상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호원  2021.08.31 08:09  
고승도 부처님 수준의 존경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승탑의 주인공 스님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뜻에서
비천상을 정성스레 탑에 새겼겠지요?
강호원  2021.08.30 20:33  
그제 7시 40분경 사진을 찍었습니다.

요즘 해뜨는 시간으로 보면 증각대사승탑에 빛이 딱
들어오는 시간에 잘 맞추었습니다.

7시20분에서 8시 사이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수철화상탑비





목탁(편액 글씨)과 밀짚모자



상사화


수철화상탑

수철화상(秀澈和尙)은 신라 후기 승려로, 실상산문의 2번째 창건주이며, 진성여왕 7년(893) 입적하였다. 탑호는 능가보월이다.
승탑은 팔각원당형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높이는 2.42m로, 그 조각이 상당히 섬세하다. 
하대석과 상대석에는 연꽃이 조각되었으며, 탑신에는 문비와 주악상이 새겨졌다. 
특히 옥개석의 기와와 서까래가 잘 남아 있는데, 우동에는 잡상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사라진 상태다.

극락전을 기준으로 오른쪽에 수철, 왼쪽에 홍척의 탑과 탑비가 놓여 있다.
(위 증각대사탑과 수철화상탑은 안내문과는 달리 그 위치가 바뀌어 있답니다.)




증각대사탑비

비는 상실되었으며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귀부는 신라 말~고려 초 당시 정석인 귀두(거북머리) 대신 거북이 몸통에 머리만 용두(용머리) 모양으로 만드는 유행이 불어서 
이름과 달리 귀두 대신 용두를 조각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 귀부는 귀두 자체에 충실한 작품으로, 그 생김이 태종무열왕릉비의 귀부와 유사하다.





08: 37. 실상사를 나와,
 



약수암으로 향합니다.
 
실상사만 보고 끝내면 산꾼의 체면이 아니기에.
이제 이 지리산꾼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언제까지 지리에 들랑가 勞心焦思(노심초사)입니다.
 
해마다 산행 높이도 낮아지고, 거리도 줄어들고 당연히 시간도 당겨지니
항상 올해가 내 지리산행이 끝인가?
걱정이 앞섭니다.
 
하기야 제 지리산 이력이 1,970년 10월부터 지리산 종주로 시작했으니 
만 54년, 이제 끝자락이 될 때도 한참 넘었습니다.
자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이고, 크게 감사할 일입니다.
 


달맞이꽃



칡꽃



09: 30. 이 안내판이 안내하는 약수암으로 들어갑니다.
요즘 국보나 보물의 호수는 없애기로 하였답니다.


보광전
 
약수암 목각불탱
불화를 조각처럼 나타낸 목각불탱으로, 국내에 6개만이 남아 있다.
하단 중앙부의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팔대보살과 제자상을 배치했다.
목각불탱 중에서는 그 크기가 아담한 편이나, 조각된 불상의 수가 적어 각 불상의 크기는 큰 편이다.

현재는 금산사 성보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몇 년 전에 그것도 모르고 잠긴 보광전 주위를 뺑뺑이 돌았는데
실상사의 본사인 금산사로 갔네요.
정작 안내판에는 없다는 얘기도 없고.



약수암 편액이 멋진 글씨로 걸렸습니다만.

 

바깥 공터에 스님 차도 있고 신발도 보이고 빨래도 널었는데,

인기척은 없습니다.

제가 까치발을 하고 살금살금 걸었지만 고즈넉한 산중 암자라 모기 소리도 들릴 터이고,

못 느끼지는 않았을 낀데, 쩝!




요 중생은 무신 죄가 있기에 이 炎天(염천)  뙤약볕의 돌확에 자기 몸이 잠기지도 않는 얕은 물이 4~50도는 넘을 것인데

목욕재계를 한답니까?

얼릉 나오세요~~~  

燒身供養(소신공양)일랑 덕 높은 스님께 맡기시고.

관세음~~~~


 

 

약수암에는 흰 상사화도 있네요.




09: 40. 약수암을 뒤로 하고 사면을 돌아 나갑니다.

 

삼정산 칠寺庵(사암)길은 영원사에서 시작해 도솔암-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 약수암- 실상사로 걷는 길을 말합니다.

그 역순으로 걸어도 됩니다.

 

전에는 당연히 하룻길이 채 안 되었지만 이제는 나누어 걷는 것도 벅찹니다.

 

돌고 돌아,

도마마을이 가까워졌습니다.




창암산이 바로 앞에 우뚝하고 저 멀리 제석봉은 겨우 보이는데 상봉은 구름이 덮였습니다.

 



백운산, 금대산




묘지에 난 무릇

 

10: 25. 도마마을로 들어섭니다.




뜨거운 날씨에 배는 실하게 크고 있습니다.




겹삼잎국화



 

주인장의 성품이 느껴지는 멋진 조경




10: 31.

도마을에서,




군자마을 지나 좋은 길로 내려가도 되는데,

객기가 발동하여 안 가본 길이라꼬 군자천을 따라 [지리산자락길]분홍색 길로 내려갑니다.

엄청나게 큰 착각이었습니다.




메꽃

 

간간이 지리산자락길 표지목은 있는데,

사람이 안 다니니 풀만 무성하고 아예 길이 끊긴 데가 많습니다

 

이리 저리 살피며  겨우 겨우 내려갑니다.

폭염에 당연히 땀도 많이 나고.

 

 

고추는 붉게 익어 가는데 땡볕에 고춧대는 축 처져 시들합니다.

       뒤에 삼정산




날이 뜨거우면 벼도 실해집니다.



람천




도마마을에서 기역 자로 다리목까지 길이 여엉 안 좋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늙은이를 괴롭힙니다.




일일초




11: 25. 당흥마을 마천정류소 도착으로 오늘의 땡볕 산행을 마감합니다.

 

처서가 지나면 다음 주부터 날씨가 조금 선선해질랑가 모르겠습니다.

산행은 계속 이어가셔야겠지요?

 

읽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琴 農  姜  鎬  元  拜 上

 
 8 Comments
일원  08.18 15:48  
펄~팔 끓는 가마솥 더위에 태양을 머리에 이고
걷는 것은 실로 凡人은 할 수 없는 일이 구먼유~
저는 토욜 1박 요랑으로 창녕 화왕산 휴양림에
입산하여 "더위야 물렀거라" 하면서 복지부동
하였습니다. 금농님을 위해서라도 더위는 이젠
물러나야 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상사화가 예쁘군요, 음악은 시원하고 늘 안산과 줄산입니다~~~
강호원  08.18 16:01  
역시 박선생께서 일등을 하셨군요.
축하합니다.

그날 모자를 준비했는데 마천에서 실상사로 택시 타고 가는 바람에 숱도 없는 민머리에
토시도 귀찮아 안 하는 바람에 벌겋게 익었습니다. ㅎ

화왕산은 송이가 제법 나오던데 요즘엔 어떻는지 모르겠습니다.

흐르는 움악은 Summer Nights 라는 곡입니다.
고맙습니다.
레테  08.18 17:17  
지리산자락길 그 구간은 또 좀 그런가베예.
작년에 지리산자락길 걸어볼라카다가
한방에 못 끝내고
금농샘 걸으신 그 구간 포함해서
어중간하게 남겨두고 말았었는데...
한파라도 몰아쳐 산에가기 머슥한날이나
한번 가서 나머지길 이어야겠습니다.

산길,식생,문화,역사등등
모든걸 다 섭렵하며 지리산을 즐기시는
선배님들은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무더운날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강호원  08.18 18:04  
김선생, 오랜만이외다.
대륙폭포까지만은 제목만 보고 아직 읽지 못해 죄송합니다.

도마마을에서  다리목까지는 풀도 무성하고 길이 안보입디다만 겨울에는 조금 낫겠네예. ㅎ

고맙습니다.
최규다  11시간전  
산행기  뜸하셨어  ᆢ걱정했습니다ㆍ
한여름 에어킨 바람에  잠시 더위  식히면서  산행기 편하게 봅니다.
 곧  들녘에 벼 익어가고 찬바람 일면 지리산 일대가  아름답게 물들텐데 ㆍㆍ
금농 선생님 
건강하게 오래오래  산행 하시길 기원 합니다
강호원  11시간전  
머나먼 서울에서 소생의 안부를 걱정해주는 분이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지리산 주능선 고지대는 곧 구절초, 쑥부쟁이, 산오이풀이 필 겁니다.

제 바람이야 지리에 더 들고싶지만
그게 어디 제 마음대로 되겠습니까?

최선생, 고맙습니다.
한등빨 부민이 는 군복무 잘 하고 있습니까?

고맙습니다.
지리n보이  11시간전  
아직 더위가 끝나지 않았으니,
산행은 좀 쉬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저도 주말에 오랜만에 지리 내려가서 좀 걸어봤더니
너무 힘들더라고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강호원  10시간전  
서선생께서도 이 염천에 지리산에 드셨군요.
연동골은 녹음도 짙고 물이 있어서 조금 시원했겠습니다. ㅎ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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